‘고향 광주서 무죄’ 선재성 부장판사, 서울고법 법정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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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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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사상 첫 재판관할 이전 항소심 첫 공판

선재성 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가 6일 오후 항소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형사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선재성 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가 6일 오후 항소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형사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선재성 피고인, 인적사항을 말씀하세요.”

6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403호 법정. 익숙한 법대 위 재판관석이 아닌 낯선 피고인석에 앉은 부장판사가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서 얘기해도 됩니다.” 재판장의 말에 해당 부장판사는 다시 자리에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인적사항을 말했다. “주민번호는?” “주소는?” 짧게 이어진 재판장의 질문에 부장판사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갔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최재형) 심리로 변호사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선재성 부장판사(49·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 모습이다. 선 부장판사는 광주지법 파산부 재판장으로 있던 지난해 법정관리 기업의 사건 대리인으로 고교 동창인 강모 변호사(50)를 선임하도록 하고 강 변호사에게서 얻은 기업 투자 정보를 이용해 1억 원의 투자 수익을 얻은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광주일고 출신으로 1990년 법복을 입은 이후 줄곧 광주 전남 지역에서 판사로 일한 선 부장판사는 서울 법정이 낯선 듯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광주지법에서 열린 1심 공판 때는 선 부장판사와 강 변호사 두 사람의 변호인단만 예닐곱 명이 나와 변호인석이 가득 찼지만 이날은 변호사가 5명만 나왔다. 방청석을 채웠던 광주 지역 법조인들과 지인들도 이날은 보이지 않았다. 선 부장판사는 재판관석이나 방청석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공판 내내 눈을 감고 있거나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재판부 역시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며 1심에서 일었던 공정성 논란을 의식한 듯 다른 피고인과 다를 바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앞서 광주지법이 선 부장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은 국내 사법 역사상 최초로 재판 관할 이전을 신청했다. 대법원 1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검찰이 낸 관할 이전 신청을 받아들여 서울고법으로 배당했다. 재판부는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공판 중에 단 한 번도 ‘부장판사’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선 부장판사에게 직접 질문을 하기도 했다. 최 부장판사가 재판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직무상 관련이 있는 법률사건의 수임에 관해 특정한 변호사를 소개·알선하면 형사처벌하도록 한 변호사법 제37조 위반 혐의에 대해 묻자 선 부장판사는 외국의 입법 사례까지 들어가며 반론을 폈다.

“피고인이 취급하는 재판 업무와 관련이 없는 사건에 대해 변호사를 추천했기 때문에 무죄라고 주장하는 겁니까. 이 법이 변호사 선정의 공정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다르지 않습니까.”(최 부장판사)

“변호사법 제37조는 외국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잉입법입니다. 형사처벌을 하도록 한 것은 재판 사무에 있어 불공정성을 막기 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선 부장판사)

이날 공판에서 검찰 측은 “1심 재판부는 가정불화 때문에 피고인이 아내의 투자 사실을 몰랐을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피고인의 월급 계좌에서 2억 원이라는 거액이 빠져나가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또 “법정관리 기업으로서는 피고인에게 허가를 받는 위치라는 점을 감안해도 피고인이 특정 변호사를 지목한 것은 알선·소개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선 부장판사의 변호인은 “뇌물수수 혐의의 경우 투기적 사업 기회를 제공받은 것이 아니고, 직무와 관련성도 없다”며 “게다가 투자를 한 것도 피고인의 아내”라고 반박했다. 이어 “관리인에게 강 변호사를 추천한 것도 상담을 권유한 것일 뿐 지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공판이 끝난 뒤 선 부장판사는 “조용히 반성하고 있다. 집에서 쉬며 외국 입법 사례 등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선 부장판사는 올해 10월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로부터 정직 5개월 처분을 받았다. 다음 공판은 20일 오후 2시 반에 열린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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