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마친 고3 벌써 취업난 걱정에 ‘스펙 관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3일 0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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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에 합격한 친구들을 보면 가장 먼저 하는 게 토익 공부더라구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예비 대학생들이 입학 전부터 일찌감치 취업을 의식한 '스펙 관리'에 몰입하고 있다.

23일 학원가에 따르면 지난 10일 수능시험이 끝난 후 최근 영어학원을 찾는 수험생들의 발길이 부쩍 늘고 있다.

파고다어학원 관계자는 "토익 등 강좌 문의로 하루 70~80통 전화를 받는데 많을 때는 절반쯤이 고3 학생이나 학부모"라며 "예비대학생 수가 매년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다 기말고사나 수시 논술고사까지 끝나가면서 학원 수강문의가 더 빗발치고있다.

일부 학원은 예비대학생을 끌어모으기 위해 수능 수험표를 지참하면 수강료를 10~20% 할인해 주기도 한다.

강남의 한 고교에 다니는 안모(18)군은 "반 친구들을 보면 영어학원에 가거나 토익책을 사서 혼자 공부하는 애들이 많다"며 "부모님이 시키는 것도 있지만 뭘 해도 토익, 토플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토익 점수가 있어야 카투사에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체육을 전공한다는 노모(18)양도 "입시학원 선생님도 수능 끝나면 영어학원에 다니라고 조언해줬다. 대학 입학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으니까 얼른 토익 900점을 넘겨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동구에 사는 나모(18)양은 "정시 지원을 준비하면서 토플 공부도 함께하고 있다. 대학 가서 교환학생에 지원하려면 필요하다고 들었다"고 했다.

운전면허나 정보처리기능사 등 각종 자격증을 따두려는 예비 대학생도 많다.

평일인 22일 오후 노원구의 한 운전면허학원 접수처에는 대기 인원의 절반 가량이 교복 차림 학생이었다.

시험장에서 만난 이모(18)군은 "반에서 수시 합격한 친구는 물론이고 정시 준비 중인 35명 중 10명 정도가 면허학원에 등록했다"며 "면허취득비가 곧 오른다는 소문을 듣고 미리 따려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수시로 전문대에 합격한 이모(18)군은 "현재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하고있다. 공무원이 하고 싶은데 한국사능력시험도 준비하고 영어공부도 바로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영학과를 지원하는 천모(20)양은 "회계학을 미리 공부해 두려고 한다. 학점을 잘 따기 위한 일종의 예습이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공부 겸해서 회계 관련 자격증도 따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수시로 국제학부에 합격한 임모(17)군은 "토익과 토플 점수는 입시를 준비하며 이미 따뒀다. 지금 스페인어 공인 자격증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의도에 사는 고모(18)군은 "다음 달부터 다니려고 운전면허, 중국어 학원을 등록한 상태"라며 "놀고 싶지만 친구들을 보니 다들 마냥 노는 것 같지는 않아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남들이 하니까'식의 막연한 스펙 관리는 진로설계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일하 서울대 기초교육원 부원장은 "자칫 허송할 수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낸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부모가 시켜서 하거나 남이 해서 따라 하는 식의 막연한 스펙 관리는 진로와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오히려 여유 있는 시간을 활용해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실컷 읽거나 해보고 싶었던 일을 시도하는 게 바람직한 대학생활을 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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