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축제에 고추 없다’ 괴산축제 하루만에 동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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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작으로 판매물량 모자라

‘올해 고추 생산량은 잦은 강우와 일조량 부족, 병해충으로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 한정판매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일 오후 충북 괴산군 괴산읍 동진천변에서 열린 괴산고추 축제장. 사람들로 북적거려야 할 축제장 내 고추판매장은 대부분 텅 비어 있었다. 판매장 입구에는 ‘고추가 품절됐다’는 플래카드만 내걸렸다. 이날 새벽부터 판매장에는 고추를 구입하기 위한 줄이 길게 이어졌지만 오전 9시 개장하자마자 동이 났다. 서울 경기 등 외지에서 이른 아침부터 고추를 구입하기 위해 축제장을 찾은 소비자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주부 유모 씨(48·여·경기 안양시)는 “괴산 고추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왔는데 물량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무슨 축제를 하겠다는 것이냐”고 따졌다.

7, 8월 계속된 비와 탄저병 확산으로 전국적으로 고추 작황이 유례없는 흉작을 기록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고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고추 생산량은 강원 인제지역 생산량이 30% 감소하고 삼척지역은 무려 50%가 주는 등 격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전국 고추 생산량이 전국 평균 30%가량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고추 생산량(마른 고추 기준)은 9만5391t이었다. 이에 따라 전국 곳곳에서 고추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매점매석 현상까지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부터 4일까지 고추축제를 연 괴산군은 축제를 앞두고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축제에서 판매할 마른 고추 물량 확보에 총력전을 폈지만 목표치(30t)의 60%인 18t만 확보했다. 이날 하루 판매한 물량은 마른 고추 14t과 고춧가루 3t이 전부였다. 지난해에는 축제 기간에 48t을 팔았다.

괴산군은 이날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확보한 마른 고추 20t을 2일까지만 팔기로 했다. 소비자에게 선착순으로 번호표를 나눠준 뒤 1인당 6kg씩 한정 판매하기로 했다. 또 3, 4일에는 마른 고추 판매를 중단하는 대신에 고추 가공공장에서 생산한 고춧가루 2.2t을 팔기로 했다. 괴산군 관계자는 “흉작에다 고추 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는 농민들이 직판장 출하를 꺼려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도시에서도 비슷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오리역 인근의 농협 하나로클럽은 지난달 18∼28일 시중에서 12만 원이 넘는 마른 고추 3kg을 100명 한정으로 5만9800원에 할인 판매했다. 판매는 오전 9시부터 시작하지만 판매 기간 내내 전날 저녁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앞 순번을 차지하기 위해 자동차나 주차장 구석에서 잠을 자는 사람도 많았다.

농협 강원지역본부에 따르면 최근 서울 가락동 농산물시장에서 거래되는 고추 가격(10kg 기준)은 5만∼6만 원으로 지난해 3만 원과 비교하면 2배가량 올랐다. 평년가격(2만 원)에 비하면 3배나 뛰었다. 고추 값은 비가 자주 내린 7월에는 10만∼11만 원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농촌 들녘과 도심 골목에서 흔히 보던 고추 말리는 풍경도 찾아볼 수 없다. 고추를 도난당할 수 있어 집 안이나 마당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말리고 있다.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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