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시 중에서도 대중교통 분담률이 높은 샌프란시스코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잘 구축돼 있다. 대중교통이나 도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비중이 지난해 기준 45.1%나 된다. 사진은 샌프란시스코 시 마켓 스트리트. 샌프란시스코=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영국 런던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신도시 밀턴케인스. 시내로 들어서자 바둑판처럼 격자형으로 잘 정비된 도로와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형 교차로 ‘라운드어바웃’이 반복해서 이어졌다.
큰길에 보행자는 없다. 보행자와 자전거가 다니는 ‘레드웨이’라고 불리는 길이 별도로 있기 때문이다.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없으니 차량은 달리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밀턴케인스는 교통체증이 드문 도시다.
이런 밀턴케인스 시가 최근 대중교통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보기 시작했다.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중장기적으로 기후변화 적응과 도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2031년 혼잡시간대 차량 통행량이 2001년보다 57%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 대중교통의 딜레마
인구 20만 명의 밀턴케인스 시민의 77%가 통근 등 일상생활에 자동차를 이용한다. 자전거 전용도로인 레드웨이가 있는데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통근하는 주민이 9%에 불과하다.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주거지나 도로와 분리된 레드웨이의 안전을 걱정하는 주민이 많기 때문이다.
제프 스넬슨 밀턴케인스 시청 디렉터는 “전기자동차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개인과 대중교통을 통합하는 새로운 솔루션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밀턴케인스 시내에는 모두 50곳의 전기차 충전소가 있다. 시 당국은 이를 150개로 늘릴 계획이다. 전기차 주차요금과 전기요금을 3년간 면제하는 파격적인 지원책도 내놨다.
문제는 대중교통이다. 복잡하고 다변화하는 교통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통전략 전문가인 스티븐 포터 영국 개방대 교수는 “과거엔 전체 교통량의 3분의 1이 피크타임에 발생했지만 최근엔 20%대로 떨어졌다”며 “인터넷쇼핑, 재택근무 등이 활성화되면서 서비스 교통량이 늘고 교통량과 목적지가 분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 전문가들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자전거, 자동차 등 개인교통과 대중교통을 물 흐르듯 이어주는 ‘토털 교통 솔루션’을 마련하고, 이용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는 ‘스마트 초이스’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 ‘개인+대중교통’의 ‘교통융합’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공영 자전거는 영국 런던, 오스트리아 빈 등 유럽 주요 도시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공영 자전거가 전철, 버스 등 대중교통의 틈새를 메워주는 단거리 교통수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시민들은 연회비나 보증금을 내면 공영 자전거를 마음대로 쓰고 반납할 수 있다. 도시 당국은 공영 자전거에 기업 광고를 유치해 재원을 마련한다.
변화의 바람은 ‘자동차 천국’ 미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트랜싯 퍼스트 시티(Transit First City)’를 모토로 대중교통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2006년부터 자전거 관련 인프라를 확대했다. 이 결과 ‘나 홀로’ 출근 차량이 2000년 40.5%에서 2009년 38.9%로 줄고, 대중교통이나 도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비중이 42.6%에서 45.1%로 늘었다.
스마트카드, 모바일 등은 교통융합의 핵심기술이다. 샌프란시스코 시는 지난해부터 ‘수요 대응형 주차시스템’인 ‘SF 파크’를 운영하고 있다. 시내 주차구역 3만 곳 중 7000곳의 바닥에 센서를 설치해 빈 공간을 시민에게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샌프란시스코 교통국의 폴 로즈 국장은 “주차공간을 찾아 배회하는 자동차만 없애도 대기오염과 교통체증을 줄이고 대중교통의 이동 속도를 높일 수 있다”며 “점진적 변화가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수요가 분산된 밀턴케인스의 경우 스마트폰으로 목적지가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택시를 함께 타는 택시 공유서비스 등의 새로운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 대중 설득 못하면 혁신은 실패
존 빈트 밀턴케인스 시의원은 “환경적 지속 가능성, 적은 자본 투자와 운영비, 개인화된 교통서비스가 필요하다”며 “시민들의 태도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빈트 의원은 “글래스고 시는 버스 노선도만 단순하게 바꿔 버스 이용자를 4% 늘렸다”며 실례를 들었다. 교통정책 부서에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행동변화나 마케팅 전문가, 새로운 교통 비즈니스모델 개발 인력 등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대중교통에 대한 시민의 믿음을 얻기 위한 마케팅도 활발하다. 영국 정부는 시민의 집을 방문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상담해주는 ‘개인여행 자문’ 서비스까지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 손잡고 직원들의 통근 습관을 바꾸는 캠페인을 펼치기도 한다. 빈 시내의 대중교통을 총괄하고 있는 비너리니엔(빈 대중교통공사)은 36만 명의 대중교통 연간사용권 소지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할인 혜택과 공연 관람권을 보내주는 고객 충성도 프로그램까지 운영한다.
빈·밀턴케인스=박용 기자 parky@donga.com 샌프란시스코=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 창원도 공영자전거 운영^ 3500여대 ‘씽씽’ ▼
지속 가능한 교통이 화두가 되면서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자전거 이용 확대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타고 자전거가 새삼스럽게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급부상했다.
경남 창원시는 2008년 10월부터 무인 대여 공영자전거인 ‘누비자’를 운영 중이다. 시내 곳곳에 설치된 163개의 자전거주차장에 3530대의 자전거가 비치돼 있다. 회원들은 연간 2만 원으로 횟수에 상관없이(1회 2시간 제한) 이용 가능하다. 회원 이 1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 곧 마산, 진해 지역까지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하승우 창원시 자전거정책 담당자는 “설문조사 결과 30대 이상 회원의 40%가량이 ‘누비자’를 승용차 대체수단으로 출퇴근에 활용하고 있다”며 “새로운 교통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고양시의 ‘피프틴(Fifteen)’은 민간투자 방식의 공공자전거 임대사업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피프틴이라는 이름은 자전거의 평균 속도가 시속 15km라는 점에 착안해 붙여졌다. 피프틴 사업에는 한화S&C, 삼천리자전거, 이노디자인, 한국산업은행 등이 투자했다.
김주영 고양시 자전거도로팀 담당자는 “연회비가 6만 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비싸지만 자전거임대소와 대수를 확대해 달라는 민원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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