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영화 ‘부당거래’의 한 장면이 현실에서도… 가짜범인 내세운 사기범에 모두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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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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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면서 범인 행세를 한 가짜 범인이 법정 구속되자 진술을 번복해 진범이 나중에 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짜 범인이 진범과 짜고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인 법원까지 모두 속여 판결까지 받은 뒤 항소심 공판에서 이를 뒤집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13일 검찰에 따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가짜 범인 강모 씨(30)는 올 4월 2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자 항소심에서 “나는 진범이 아니다”라며 재판 결과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강 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김영대)는 즉각 수사에 나서 진범 신모 씨(33)와 정모 씨(32)를 12일 체포했다. 신 씨는 검찰에서 범인을 바꿔치기한 사실을 자백했다. 검찰은 13일 신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 법정 구속되자 마음을 바꿔

경남지방경찰청은 올해 초 6억 원대 신종 문자메시지 사기 혐의로 신 씨와 정 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들은 “강 씨에게 명의와 전화번호를 빌려준 것일 뿐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며칠 뒤 경찰에 출석한 강 씨는 뜻밖에도 혐의를 순순히 자백해 곧바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추가 수사를 벌여 강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판사 배준현)도 강 씨 진술을 그대로 믿고 4월 29일 “강 씨의 진술이 일관되고 범행 수법이 전문적”이라며 징역 1년 6개월과 함께 법정 구속했다.

신 씨 등의 계획은 여기서부터 일그러졌다. 예상치 못한 중형이 선고되고 구치소에 수감된 강 씨가 변심했기 때문이다. 강 씨는 즉각 검찰에 반성문을 보내는 한편 5월 2일 항소심 재판부에 항소 이유서를 제출했다. 이유서에는 자신은 진범이 아니고 신 씨 등 진범 2명이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이다”라고 회유하며 그 대가로 매달 200만 원과 함께 취직을 시켜주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신 씨 등이 경찰에서 조사받은 내용을 A4용지 20여 장에 적어 건네며 외우게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 경찰-검찰-법원 모두 농락당해

신 씨 등은 경찰-검찰-법원으로 이어지는 국내 형사사법 체계를 사실상 농락했다. 특히 이 사건 경찰 수사를 담당한 경남지방경찰청은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에 있는 신 씨 등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고서도 “사무실에 사람이 없고 문이 잠겨 있다”며 집행을 하지 않고 ‘집행 불능’ 처리를 했다. 또 혐의 입증에 필요한 증거 자료를 임의 제출 형식으로 넘겨받은 것으로 드러나 ‘부당거래’의 단초가 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1심 재판부 역시 진범이 아닌 가짜 범인을 피고인으로 두고 판결문을 작성한 만큼 체면을 구기게 됐다.

법률 전문가들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범인 바꿔치기가 진범과 가짜 범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부실한 초동수사까지 더해진다면 언제든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법원 관계자는 “실형을 피하려는 진범과 돈이나 금품 등이 필요한 가짜 범인이 서로 입을 맞춘 뒤 (가짜 범인이) 죄를 떠안을 각오를 하고 검찰로 송치될 경우 검찰 수사나 재판 단계에서 밝혀내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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