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직후 절도 재범’ 국민참여재판… 본보 기자 ‘그림자 배심원’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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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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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범죄”… “상습범” 70분 공방

22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법 406호. 이곳에서는 이날 오전부터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김용관) 심리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백모 씨(41)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국민참여재판은 20세 이상의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해 유무죄 평결을 내리지만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이날 재판에는 일반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외에도 본보 기자를 포함해 ‘그림자 배심원(shadow jury)’ 10명이 함께 참여해 공판을 지켜봤다.

○ 상습절도 vs 특수절도

“9번이나 절도 전과가 있는 백 씨는 출소하자마자 남의 물건을 또 훔쳤습니다. 수법도 똑같습니다. 생활이 어렵다고 모두가 도둑질을 하지는 않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현명한 판단으로 우리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데 힘을 보태주시기 바랍니다(검찰).”

검사의 말이 끝나자 몇몇 배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일부 그림자 배심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날 재판의 핵심은 백 씨에게 형법상 특수절도를 적용하느냐, 아니면 특가법상 상습절도 혐의를 적용하느냐는 것. 특가법이 적용되면 무기징역 또는 징역 6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되지만 형법이 적용되면 일반적으로 이보다 낮은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 형이 선고된다. 검찰은 이날 상습절도 혐의를 적용했지만 피해금액이 적다는 이유 등으로 작량감경을 해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이번에는 변호인이 검찰 주장을 반박했다. “백 씨가 동종 전과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정말 돈 없이 노숙을 하다 저지른 우발적 범행입니다.”

백 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성동구 행당동 길가에 만취해 누워있던 박모 씨를 발견하고 평소 알고 지내던 김모 씨(38)를 불러 박 씨의 지갑을 훔치도록 했다. 백 씨는 훔친 돈 8만 원 중 3만 원을 가졌다. 당시는 백 씨가 상습절도죄로 3년 6개월을 복역하고 9월 말 출소해 20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백 씨는 최후진술에서 “미싱사로 취직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누나에게 빌린 돈도 다 써서 저지른 것이지 상습범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일부 그림자배심원들은 백 씨의 말에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으며 일부는 다시 한번 판단하려는 듯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다.

○ 엇갈린 판결

피고인 신문이 끝난 뒤 그림자 배심원들은 5명씩 2조로 나눠 평결을 위한 토론에 들어갔다. 일반 배심원 7명도 별도의 자리에서 토론을 이어갔다.

“너무 가난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 같은데 상습범이라고 보긴 힘들지 않나요.”

“같은 전과가 너무 많아요. 공범까지 동원했잖아요. 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합니다.”

기자가 포함된 조는 70분이나 열띤 공방을 벌였지만 의견이 엇갈려 합의에 이를 수 없었다. 결국 다수결에 들어가 3 대 2로 형법상 특수절도로 판단했다. 형량은 징역 2년과 1년 6개월이 각각 2명, 1년이 1명이었다.

그러나 일반 배심원단과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특가법상 상습절도 혐의를 유죄로 건의했다. 다만 피해 금액이 적은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징역 4년으로 건의했다. 재판부도 이를 존중해 “범행 경위가 우발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같은 취지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한 그림자 배심원은 “일반 국민은 범죄에 대해 일반적 감정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 같다”며 “실제 내가 내리는 형량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니 감정대로 판단할 수만은 없었다”고 평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그림자 배심원(shadow jury) ::


국민참여재판에서의 일반 배심원과 마찬가지로 재판 과정을 모두 지켜본 뒤 피고인의 유무죄를 가리고 형량을 정한다. 그러나 일반 배심원과 달리 재판부에 평의, 평결 결과를 건의하지 않고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림자 배심원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대법원 홈페이지(www.scourt.go.kr)에서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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