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갈등’ 이렇게 풀자/2부]<1>‘반값’ 주장 정치권 재원案 따져보니

  • 동아일보

● 한나라 “5년뒤 350만원으로”… 2016년부터 年6조∼7조 필요
● 민주 “전면 반값 고지서”… 당장 내년부터 7조원 소요

여당과 야당이 백가쟁명 식으로 대학 등록금 인하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구체적인 지원 규모와 시기에 대해서는 ‘말 바꾸기’만 계속된다. 길거리에 나온 대학생들을 향해 설익은 정책을 남발하는 형국이다.

지금까지 정치권이 내놓은 등록금 인하 방안 중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등록금 지원용 예산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데다 어디서 그 재원을 마련할지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 반값 등록금, 최소 6조 이상 필요

우리나라 등록금 총액은 국공립대와 사립대(전문대 포함)를 합해 총 14조7000억 원 규모다. 정치권은 국가 장학금과 각 대학 장학금 등 3조1000억 원 정도를 제외하면 순수 등록금 납부액은 11조6000억 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당초 꺼낸 카드는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차등 지급해 등록금 부담을 완화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등록금 자체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자 한나라당은 최근 등록금 인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매년 등록금을 5∼10%씩 낮춰 등록금을 현재의 절반 수준인 350만 원 정도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5년 동안 매년 1조∼2조 원씩 지원 예산이 늘어나 2016년부터는 한 해 6조∼7조 원 정도가 필요하다.

민주당은 처음에는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원을 하기 위한 방안을 준비했다. 그러나 민주당 수뇌부도 길거리로 나온 뒤부터 전면 ‘반값 등록금’으로 방침을 바꿨고 시행 시기도 내년으로 당겼다. 민주당은 국공립대 반값 등록금을 위해 9500억 원을 국회에서 당장 편성하고, 사립대 반값 등록금을 위해 필요한 6조 원은 고등교육재정특별교부금법을 신설해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결국 정치권이 주장하는 반값 등록금 지원 예산은 고등학교를 무상교육으로 하는 데 필요한 1조1300억 원의 6배 정도가 드는 셈이다. 이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고교 무상교육도 재정 부족을 이유로 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대학의 반값 등록금은 과도한 투자”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 “등록금 재원 마련 방안 실현 불가능”

수조 원의 재원 마련 방안으로 정당들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고등교육재정특별교부금을 신설하는 것이다. 초중등학교를 위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주는 것처럼 대학을 위한 교부금을 내국세의 일정 비율로 충당하자는 얘기다. 관련법은 여야가 각각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재원마련 방안 대부분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전면적인 반값 등록금을 위해 6조 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추경예산은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 경기침체, 대량 실업과 같은 중대한 변화가 생겼을 때 편성하도록 돼 있다. 정부 관계자는 “논의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반값 등록금은 법적으로 추경예산 편성 요건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대학 연간 등록금 중 국가 장학금 등 감면액 3조1000억 원과 대학 자구노력으로 1조3000억 원을 조달하면 실제 정부 재정지원은 4조5000억 원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획예산처 차관 출신인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현재 쓰고 있는 장학금 3조1000억 원은 가용할 수 없는 예산인데 이미 확보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허구”라고 지적했다. 3조1000억 원을 반값 등록금 예산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지금 장학금을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하나도 주지 않을 경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2016년까지 등록금을 절반가량 인하하겠다는 한나라당의 계획도 실현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 이미 한나라당 신임 지도부가 발표한 만 3∼4세 보육비 국가 지원 사업에 필요한 재정이 2조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등록금을 위한 추가 재원을 마련하려면 기존 사업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예산 경직, 대학경쟁력 저하” 우려

전문가들은 고등교육재정특별교부금법으로 정부가 대학을 지원할 경우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학령인구가 감소하는데 교부금을 법제화하면 낭비될 가능성이 크다. 대개 예산이란 한번 확보되면 무조건 쓰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예산을 주면 대학들이 구조조정 노력을 게을리 해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임희성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면서도 “재정 정보공개를 확대하고 뻥튀기 예산 편성을 근절하는 등 책임 강화를 위한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아니면 정부 지원이 사학의 책임만 감면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반값 등록금 재원 마련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
나서는 곳 없이 줄다리기


‘반값 등록금’ 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어디서 부담하느냐를 놓고 정부 부처 간, 정부와 대학 간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기획재정부에 결정을 맡기고 있고, 재정부는 대학의 자구 노력을 기대한다. 하지만 대학들은 정부의 선지원을 요구하며 공을 넘기고 있다.

교과부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13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등록금 현안을 보고하며 “검토 중”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향후 대책에 대해서도 “국회와 긴밀히 협의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등록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모호하게 답변했다.

이 장관의 원론적인 답변이 이어지자 의원들에게서는 질타와 구체적인 정부안을 제시해 달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이에 이 장관은 “국가장학제도를 대폭 보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대학 신입생의 경우 대출제도와 연계된 성적 제한을 없애는 등 개선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교과부는 저소득층 중심의 국가장학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을 줄 수 있는 데다 예산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 재정부의 승인에 달려 있기는 마찬가지다.

기부금 세액공제 방안에 대해서도 이 장관은 “부처 내 이견이 있지만 협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소극적으로 답했다. 기부금 입학제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현재 5000억 원 규모의 장학금 혜택을 단계적으로 늘리려고 해도 재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며 “최근에는 장학금 등 간접 지원 방안이 아닌 등록금 자체를 낮추는 쪽으로 논의가 확대되고 있어 재원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도 이날 국회에서 “정부 재정으로 반값 등록금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명목 등록금을 10%만 인하하려 해도 연간 1조5000억 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하다. 등록금을 절반 수준까지 낮추려면 올해 고등교육 예산 5조546억 원의 30%나 되는 예산을 매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내국세의 4∼10%를 고등교육 특별교부금으로 신설하는 방안까지 나왔다.

재정부는 정부의 재정 지원에 앞서 대학들이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등록금을 인하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더라도 대학의 자구 노력 정도에 따라 차등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등록금 인하 정책은 1, 2년의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정부나 대학에서 장기적인 재정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등록금 인하 정책은 무상 급식처럼 일종의 복지 정책이다. 복지 예산은 일단 책정하면 추후에 줄이거나 없애기가 힘들어 더욱 고민이 크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학은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는 등록금을 인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립대학들은 등록금을 10∼15%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지만 정부 재정 지원을 전제로 두고 있다. 박철 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대학 장학금 재정을 지원해주면 대학도 등록금을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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