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지원 부익부 빈익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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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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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싶지만… 中企 “지원땐 인건비 30%↑”… 엄두 못내
주긴 주지만… 대기업 ‘4말 5초 퇴직 시대’… 수혜율 줄어

대기업 계열사 부장이던 50대 A 씨는 임원 승진에 번번이 실패해 얼마 전 보직을 박탈당했다. 책상도, 할 일도, 식사시간에 부르는 이도 없었다. A 씨는 자존심도 버리고 빈 회의실을 찾아다니며 몇 달을 버텼다. 오로지 대학생인 두 자녀 때문이었다. 신학기가 돌아와 1000만 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회사에서 지원받은 그는 비로소 가시방석 같은 회사 문을 나섰다.

대학 등록금이 치솟아 가계에 큰 부담이 되면서 기업의 등록금 지원정책이 사원복지에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등록금 상승세를 감안하면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자녀 한 명의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는다면 총 3000만∼4000만 원을 추가로 받는 셈이기 때문이다.

○ 등록금 지원도 부익부 빈익빈

대기업은 대부분 등록금 지원책을 잘 갖추고 있다. 1970, 80년대부터 자녀의 중고교 학비 지원이 기본적 복지정책으로 자리 잡았고, 자연스레 대학 학자금까지 지원하게 됐다. 해외 유학이 늘어나면서 외국 대학에 진학해도 국내 사립대 수준의 등록금을 지원해 주는 곳도 적지 않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LG전자 등은 모든 임직원에게 전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100% 지원해 준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은 일정 기간 이상 근속한 직원에게 자녀의 등록금을 준다. 신세계는 현직 임직원 자녀는 물론 근속요건을 갖춘 퇴직자 자녀까지 등록금을 지원한다.

한때 ‘신의 직장’으로 불렸던 공기업은 최근 2, 3년간 등록금 무상 지원이 대부분 대출로 바뀌었다. 2009년 기획재정부에서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예산편성 지침’을 통해 과도한 복리후생에 제동을 거는 바람에 현재 자녀 학자금을 그냥 주는 공공기관은 거의 없다.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 등이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정도다.

학자금 지원을 꿈도 꿀 수 없는 중소기업 직원들의 사정은 팍팍하다. “정년을 넘겨도 계약직으로 일하게 해주는 것이 학자금 지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경기지역의 한 주물공장에서 일하는 김모 씨는 정년(58세)을 넘겨 올해 환갑을 맞았지만 아들의 대학 등록금 때문에 여전히 하루 10시간 가까이 일하고 있다. 그는 “수백만 원이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않으니, 아들이 졸업할 때까지 2년만 더 일하고 싶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중소기업에서 20년 넘게 일해도 연봉 4000만 원 넘는 사람은 드물다. 학자금을 지원하면 인건비 부담이 30% 가까이 커져 엄두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대기업 근로자는 대학 등록금까지 무상으로 받고, 저(低)임금 중소기업 근로자는 등록금도 지원받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어서 ‘등록금 부담 양극화’까지 빚어지고 있다.

○ 대기업도 실질적 수혜자는 줄어

대기업의 학자금 지원책이 잘 마련돼 있다지만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는 이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결혼과 출산 나이는 늦어지고, 퇴직은 빨라지다 보니 자녀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근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출산율까지 떨어져 수혜를 보는 자녀 수도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첫째아이를 낳은 여성의 나이는 평균 30.09세다. 자료가 있는 1993년(26.23세)과 비교해 3.86세나 늦어졌다. 통상 남편이 부인보다 2∼4세 많은 점을 감안하면 첫째가 대학에 입학할 즈음이면 남성은 정년이 바짝 다가온다.

주요 대기업의 실제 퇴직연령이 정년(58세)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까지 계산하면 학자금 혜택은 ‘그림의 떡’일 때가 많다. GS칼텍스의 지난해 평균 퇴직연령은 47.2세, KT는 52세, 포스코는 53세였다. 그나마 여기는 사정이 나은 편이고 전자,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은 30대 퇴직자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대학 학자금 대신 초중고교생 사교육비를 지원하거나, 교육비 관련 총액을 정해 놓고 지원하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포스코는 8000만 원 한도 내에서 자녀 3명까지 필요할 때 학자금을 쓸 수 있게 했다. 사무용 가구를 생산하는 퍼시스는 초등학교 입학 전 아동의 2년간 교육비를 지원한다.

살인적인 등록금 문제의 근본적 해법은 85%에 이르는 비정상적인 대학 진학률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고, 대학들이 재정을 건전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가능한 해법을 찾자면 기업의 학자금 지원이 늘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도 있다. 특히 대기업은 대학 졸업자들이 각 기업에 인적자원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수혜자 부담이라는 측면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퇴직자와 외부인을 위한 장학사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임금의 양극화로 등록금 부담 양극화도 커지고 있어 사회와 정부가 중소기업 종사자들에 대한 등록금 지원 확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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