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온 가속기, 美설계 표절]과학계, 교과부 해명 반박

  • 동아일보

“벤치마킹은 참고하는 것이지 베끼는게 아니다”

표절 의혹 해명하는 연구진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설계를 담당했던 연구진들이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교육과학기술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중이온가속기 표절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정면 왼쪽부터 김용균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홍승우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이원주 전 한국가속기 및 플라스마연구협회 연구원. 표절 당사자인 고승국 울산대 물리학과 교수는 참석하지 않았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표절 의혹 해명하는 연구진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설계를 담당했던 연구진들이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교육과학기술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중이온가속기 표절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정면 왼쪽부터 김용균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홍승우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이원주 전 한국가속기 및 플라스마연구협회 연구원. 표절 당사자인 고승국 울산대 물리학과 교수는 참석하지 않았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한국형 중이온가속기(KoRIA)의 가속관 기초설계가 미국 미시간주립대의 중이온가속기 ‘에프립(FRIB)’를 베낀 것과 관련해 교육과학기술부가 ‘통상적인 벤치마킹의 하나’라고 19일 해명한 데 대해 ‘관계자들이 중이온가속기의 연구 목적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는 과학계의 반응이 주를 이뤘다.

금동화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은 “벤치마킹이 의미를 가지려면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며 “기본적인 개발 윤리마저 망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벤치마킹의 의미는 ‘모방해서 잘할 수 있는가’에 있다는 것이다. 선진 기술을 토대로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거나 연구 목적에 맞도록 개량을 해야 진정한 벤치마킹이라는 의미다.

금 부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중이온가속기를 만들어 20년 뒤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더니 미국 것을 그대로 가져오면 무슨 차이가 있냐”고 지적했다. 또 그는 “선진 기술을 모방하기로 했다면 그 이유가 타당해야 한다”며 “벤치마킹이 통상적인 과정이라는 해명보다 ‘왜 FRIB의 가속관을 모방해도 KoRIA의 연구는 문제가 없는가’라는 의문을 풀어줘야 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벤치마킹은 참고를 하는 것인데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점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하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한 연구원도 “미국 기술을 베낀 것은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할 능력이 안 된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라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백성기 포스텍 총장은 “가속관의 출력이 같은 점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중이온가속기의 가속관 모양은 비슷하더라도 연구 목적이 국가별로 다르기 때문에 ‘무슨 입자를 얼마나 가속시키는가’를 결정하는 출력은 같을 수 없다. 백 총장은 “다른 시설과 출력 수치가 같다는 점은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또 교과부가 “개념설계보고서는 이미 공개된 자료이므로 저작권 침해 등의 소지는 적을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한 데 대해 과학계는 “공개된 자료라도 반드시 ‘출처 표시’를 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물리학자 출신인 박영아 국회의원은 “가속기를 설계할 때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금 부회장은 “공개된 기술이라도 이를 사용할 때는 개발한 측에 동의를 얻는 것이 상식”이라며 “국제적으로 신의가 떨어지는 짓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한편 과학계 일각에서는 ‘짧은 연구 기간에 여러 시설과 부품에 대해 일일이 실험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거나 ‘중이온가속기는 다른 나라와 경쟁해 이익을 내는 사업이 아니고 이 같은 거대과학시설 개발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모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 것을 그대로 베낀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대다수 과학자의 반응이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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