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온 가속기, 美설계 표절]교과부 연구팀 말바꾸기

  • 동아일보

지난 1년여 홍보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가속기”
‘표절’ 보도 이후 “선진시설 장점 벤치마킹했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KoRIA) 기초설계가 미국 미시간주립대 ‘에프립(FRIB)’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확인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1년여 동안 ‘KoRIA는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중이온가속기’라고 홍보해오던 입장을 바꿔 19일 “선진시설의 장점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통상적인 과정의 하나”라고 말을 바꿨다.

기초설계를 맡은 연구팀은 교과부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평가위원들이 ‘독창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부분을 삭제한 사실도 확인됐다. 게다가 주요 연구 책임자들이 표절 여부를 놓고 서로 다른 얘기를 하면서 KoRIA 설계를 둘러싼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 최종보고서 원안엔 ‘기술적 독창성에 대한 설명 필요하다’ 지적


홍승우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KoRIA 개념설계 총괄 과제 책임자)가 한국연구재단에 제출한 최종보고서(원안)에는 ‘수정·보완 요구사항 반영 내역’이란 내용이 첫 페이지에 담겨 있다. 이는 2월 17일 해외 가속기 전문가 4명을 포함해 국내외 전문가 10여 명이 KoRIA 개념설계 내용에 대해 최종 평가를 했고, 이 내용을 항목별로 정리한 것이다. 보고서에는 총 12항목이 정리돼 있다.

이 가운데 세 번째 항목은 KoRIA의 기술적 독창성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KoRIA의 핵심적 기술사항이나 기술적 독창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며 특히 예상되는 기술적 난제나 해결방안 등에 대한 제시가 필요함”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은 교과부 최종보고서에는 사라졌다. 홍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두 보고서 모두 내가 작성한 것이 맞다”면서도 “둘 사이의 내용이 왜 다른지는 모르겠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을 했다. 홍 교수는 또 “두 보고서 모두 한국연구재단에 제출했으며 그 후 교과부에는 어떻게 전달됐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총괄책임자와 세부과제 연구자 얘기 달라

19일 오후 4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교과부 기자실에서 ‘중이온가속기 표절 의혹’에 대한 브리핑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과제 총괄책임자인 홍 교수는 KoRIA와 에프립의 가속관 가속 수치가 공교롭게 일치한 부분에 대해 해명을 했다. 하지만 가속관 부분을 담당했던 세부과제의 연구자와 말이 달랐다.

홍 교수는 “가속기에서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이 다르면 설계가 다르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서 가속관의 가속 속도도 새롭게 계산을 해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에프립과 다른 주파수 대역에서 설계를 하면서도 선진국의 연구 결과와 수치가 유사한 것은 (우리의 연구가) ‘옵티마이제이션’(최적화)이 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가속관 가속 속도 4개 중 3개가 일치한 것이 우리나라 연구진의 시뮬레이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가속관 세부과제 연구자 측에서 나온 이원주 전 한국가속기 및 플라스마 연구협회(KAPRA) 연구원의 설명은 이와 달랐다. KoRIA가 에프립의 가속관 가속속도를 “따왔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홍 교수와는 다른 말을 했다. 이 전 연구원은 “가속관의 가속속도는 목표 수치로 선행 연구 결과를 이용하면서 가져온 것”이라고 말하면서 에프립의 개념 설계를 바탕으로 했음을 인정했다. 그는 “KoRIA의 가속관 가속속도 4개 중 1개가 에프립과 다른 것은 추후 계산을 하다보니 수정이 필요해서 고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결국 ‘표절 의혹’의 핵심이 되는 부분에 대한 설명에서 연구 총괄책임자와 세부과제 담당자가 해명 과정에서도 엇박자를 낸 것이다.

○ 해외 벤치마킹했다고 한번도 말하지 않더니


KoRIA를 설계한 연구자들은 그동안 독창적으로 설계한다는 내용을 줄기차게 설명했을 뿐 ‘해외 선진국의 가속기를 벤치마킹한다’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홍 교수는 18일자 본보 기고에서 “해외에서 건설 또는 계획 중인 중이온가속기와 차별화되는 독창적인 중이온가속기가 제안됐고, 이는 해외 전문가 집단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본보의 ‘표절 의혹’ 제기 이후 서둘러 마련된 브리핑에서는 ‘선진 연구를 가져와 쓰는 것은 관행’이라면서 입장을 급선회했다. 홍 교수는 “KoRIA와 에프립이 유사하게 나온 것은 과학 연구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창적이라는 주장에서 한 발 물러나서 “원형가속기와 선형가속기를 접목시킨 것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 부분은 독창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에프립의 가속관 부분을 차용하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은 부분은 잘못했다고 시인했다. 그는 “인용문제 대부분은 참고문헌이 표시되어 있는데 짧은 시간에 하다보니 일부 누락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개념 설계와 상세 설계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선행 연구를 참고해 만드는 개념 연구에서는 참고문헌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등 모순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김규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youta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