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 강국 안전나사 조이자]<1>일반인-전문가 안전 시각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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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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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原電사고 대비, 국민 72% “부족”… 전문가 90% “양호”

우리나라 국민들의 ‘방사성 물질 체감 공포증’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 이번 설문조사에서 나타났다. 또한 상당수 국민은 원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전기료를 올리거나, 집 근처에 원전 관련 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반대하는 ‘이중잣대’를 보였다.

○ 원전 불안감 증폭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내 원전도 불안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43.2%에 달했다. 같은 응답자를 대상으로 1년 전엔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23%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1년 만에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응답자가 2배 가까이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불안감은 식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산 농수산물이 방사능 검역을 통과하더라도 앞으로 먹지 않겠다고 답한 국민은 3명 중 2명(66.1%)에 달했다. 특히 전업주부는 10명 중 8명(81.3%)이 이같이 대답했다. 한국은 지난해 일본산 수산물 가운데 명태(3만1108t)를 가장 많이 수입했다. 멍게와 갈치 고등어 참치 꽁치도 일본에서 주로 수입하는 어종이다.

○ “정부 발표도 못 믿겠다”


방사성 물질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도 깊어지고 있다. “한국은 일본 방사성 물질 누출에 안전하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국민의 5.9%만 수긍했다. 절대 다수의 국민은 정부 발표와 달리 안전하지 않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기준치 이하의 방사선은 피폭돼도 해롭지 않다는 정부 발표에도 7.5%만 동의했다. 또 ‘일본 원전 사고 이후 방사선 피폭에 대비하기 위해 개인 수준에서 어떤 대응을 하느냐’는 질문에 32.3%가 ‘가급적 외출을 삼간다’고 했고 22.1%는 ‘외출 시 마스크 등을 착용한다’고 답했다.

○ 원전 필요하지만 내 뒷마당은 “NO”


원전 불안감이 확산되는 가운데서도 우리 국민은 원전의 중요성은 인정하고 있었다. 일반인 10명 중 7명은 원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필요 없다’고 답한 비율은 8.2%에 그쳤다. 하지만 거주지 인근에 원전이나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선 강하게 반대했다. 원전 설치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56.8%, 방폐장 설치 반대는 74.8%에 달했다.

앞으로 원전을 늘려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현 수준 유지(38.7%)’가 가장 많았다. ‘원전을 줄여야 한다’는 응답자 33.6% 가운데 절반(49.7%)은 원전 축소에 따른 전기료 인상 방침에는 반대했다. 문준열 인사이트코리아마케팅리서치 대표는 “국민들에게 원전은 ‘꼭 필요하지만 피하고 싶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원전을 줄여야 하지만 전기료 인상은 반대한다는 것은 약간 이중적인 잣대”라고 말했다.

○ “일본과 같은 일 벌어지면 우리도 큰 사고”


일본과 유사한 원전 사고가 한국에서 일어났을 때를 예상하는 질문에서 일반인의 62.3%는 ‘평소 대비가 부족해 큰 사고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26.5%는 ‘대비는 잘돼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우려된다’고 답했다. 원전 사고 대비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마련해야 할 방안으로는 35.0%가 ‘신속한 대응 체계 마련’을 꼽았다. 원전 건설과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시설 안전성’이라는 응답이 72.3%로 가장 많았고, ‘에너지 발생 효율’ 같은 경제 논리는 9.3%에 불과했다.

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 sypyo@donga.com@@@
▼ 전문가들 “원전 공포감 과장… 정확한 정보 국민에 더 알려야” ▼


원자력 전문가들은 일반인들과는 확실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전문가 20명 가운데 한국 원전에 대해 ‘매우 안전하다’(10명)와 ‘대체로 안전하다’(8명)로 긍정적인 대답을 한 사람은 18명으로 90.0%였다.

또 ‘한국 원전은 사고에 대한 대비가 잘돼 있느냐’는 질문에 전문가의 90%는 ‘그렇다’고 답한 반면 일반인의 71.5%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국민은 원자력 전문가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원자력 전문가를 신뢰한다’는 답은 전체의 18.5%인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배가 넘는 39.8%로 조사됐다.

이런 괴리감에 대해 전문가들은 두 가지 시각을 가지고 있다. 우선 국민이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은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 기술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국민이 불안해하는 게 당연하다”며 “방사선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지나친 공포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장순흥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원전이 환경친화적이라는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 나왔지만 실제로 얼마나 안전한가에 대한 소통은 부족했다”며 “양측이 서로 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원전을 안전하다고 평가한 전문가들도 ‘일본과 유사한 대형 원전 사고가 한국에서도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의견이 갈렸다. 전문가 중 45%는 ‘준비가 양호해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답한 반면 45%는 ‘준비는 양호하나 실제 상황에서는 걱정’이라고 답했다. 이 밖에 ‘평소 사고대비가 부족했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창의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답이 5%, ‘평소 사고대비가 부족해 실제 일이 벌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것’이라는 답이 5%였다.

원전 전문가들은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초기 대응 부족’이 이번 일본 원전 사고 처리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전체의 47.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매뉴얼에만 의존한 경직된 대응 방식’을 문제로 보는 의견이 28.9%로 그 뒤를 이었다. 이 교수는 “원전 내부에 수소가 가득 차 격벽이 파손될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미리 수소를 뽑아내지 않은 것은 실수”라면서 “수소에 방사성 물질이 섞여 나올 것을 고민하다가 초기 대응 시기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원전을 통째로 폐기해야 하는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한 대응책은 세계 공통의 매뉴얼에도 나오지 않는다”며 “여러 가지 긴급 상황에 대비해 매뉴얼을 융통성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초기에 정보를 은폐한 사실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이 교수는 “사태 초기에 일본 정부도 원전 내부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었겠지만 그 이후에는 정확한 정보를 국민과 국제사회에 제공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원전시설 중 시급히 개선해야 할 부문’에 대한 질문에서는 전문가 중 55%가 ‘지진이나 쓰나미 대비’를 꼽았다. 박광헌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국내 원전의 전력 공급 시스템이 일본에 비해 잘돼 있다고는 하지만 쓰나미에는 여전히 취약하다”며 “전기가 없어도 냉각장치를 구동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영혜 동아사이언스 기자 yhlee@donga.com@@@
:: 설문참여 전문가 20인 - 가나다순 ::


강현국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 김규태 동국대 에너지및원자력공학부 교수 김명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김신 제주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김영일 한국원자력연구원 고속로기술개발부 부장 김용균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김용완 한국원자력연구원 수소생산원자로기술개발부 부장 김종경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노선봉 우리기술(원자력안전시스템업체) 대표 문주현 동국대 에너지및원자력공학부 교수 박광헌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송종순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윤철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이은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이재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이헌주 제주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장순흥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 제무성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 일반인 조사 어떻게 했나 ▼
인구통계 맞춰 성별-연령-직업 등 안배해 설문


이번 여론조사는 동아일보가 인사이트코리아마케팅리서치(대표 문준열)에 의뢰해 전국 만 20세 이상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79%포인트다. 인사이트코리아의 패널 20만 명 가운데 실제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성별, 연령, 직업, 거주지, 가구소득, 결혼 여부 등을 안배해 구성했다. 예를 들어 20대 참여자 수는 우리나라 인구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율(18.6%)에 맞게끔 558명으로 했다. 총 4435명에게 e메일을 보내 링크된 홈페이지로 들어가 응답하도록 했다. 설문은 △원자력발전에 대한 일반 인식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인식 △원전 관계자 및 전문가에 대한 신뢰도 △국내 원전 안전을 위한 방안으로 주제를 나눠 총 15문항으로 구성했다. 원자력 전문가 20명은 동아사이언스팀이 전화 및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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