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양천해누리푸드마켓 앞. 참기름 타는 고소한 냄새가 바람 타고 동네를 휘저었다. 코를 킁킁거리며 추적해보니 냄새의 발원지는 푸드마켓 뒤 창고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33m²(약 10평) 남짓한 작업실이 나왔다.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에 ‘양천구 김구이 봉사단’이라고 불리는 아줌마 자원봉사자 5명이 있었다. ○ 2년 동안 10만 장의 김을 굽다
김 굽는 기계에선 김이 한 장 한 장 구워져 나왔다. 한쪽에선 이 김들을 10장씩 묶어 봉지에 담고 있었다. 김 굽는 담당부터 김 10장씩 묶기, 묶은 김을 봉지에 담는 일까지 작은 공간에서 한 번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치 도박판 ‘타짜’의 현란한 손놀림을 연상케 했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이곳에 출근해 김을 굽는다. 이렇게 구운 김은 푸드마켓으로 건너 가 양천구 기초생활수급권자 4200가구에 무료로 제공된다. 김과 참기름, 소금 등 재료비(연 300만∼400만 원)는 모두 서울시공동모금회에서 받은 성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봉사단을 꾸린 지는 올해로 2년째. 왜 ‘김’을 봉사 아이템으로 정했을까. 초창기 멤버인 이춘희 씨(62)는 “어른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10년 전부터 동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목욕 봉사 및 반찬 배달 봉사를 해오면서 노인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요리보다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반찬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김이었다. 이 씨는 곧바로 김종순 씨(57)와 함께 김구이 봉사단을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김구이 봉사단 소식을 듣고 무작정 작업실에 찾아온 최정자 씨(54)와 최 씨가 하루 못 나와 ‘대타’로 김을 구웠던 박종득 씨(58)가 합류했다. 이들이 2년 동안 구운 김은 10만 장이 넘는다. ○ 내 자신을 위한 김 굽기
김 씨는 “그냥 김을 구우면 다 탄다”며 “200도 불에 식용유 0.5L, 참기름 250mL의 조합을 잘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을 굽는 데 빠질 수 없는 것이 ‘수다’다. 그중 “처음엔 남편이 ‘김구이 봉사단 꼭 나가야 하냐’며 잔소리를 해 마음고생이 심했다”와 같은 남편 흉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내 진지해졌다. 박 씨는 “평생 자식을 위해 살다 자식들이 결혼해 떠나니 그 마음을 누군가에게 새로 쏟고 싶은 것”이라며 “매주 목요일 ‘내일은 김구이 봉사가 있다’는 문자메시지가 올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그런 이들에게 마음을 담아 김을 구워주고 싶은 상대를 물었다. 대답은 ‘남편’이었다. 왜일까?
“여기서 1000장씩 굽다 집에 가는데 힘이 남아나겠어요? 남편이 눈치 없이 김을 구워달라고 할 때면 화도 버럭 내곤 했죠. 그래도 믿을 사람은 남편밖에 없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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