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金요일이면… 김 굽는 아줌마 5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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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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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천구 ‘김구이 봉사단’ 화제

매주 금요일 1000장의 김을 구워 노인 및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양천구 김구이 봉사단’ 아줌마들. 이춘희, 박종득 씨, 양천구해누리푸드마켓 이청미 소장, 김종순, 최정자 씨(왼쪽부터)가 작업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박은희 씨는 이날 참석하지 못했다. 양천구 제공
매주 금요일 1000장의 김을 구워 노인 및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양천구 김구이 봉사단’ 아줌마들. 이춘희, 박종득 씨, 양천구해누리푸드마켓 이청미 소장, 김종순, 최정자 씨(왼쪽부터)가 작업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박은희 씨는 이날 참석하지 못했다. 양천구 제공
1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양천해누리푸드마켓 앞. 참기름 타는 고소한 냄새가 바람 타고 동네를 휘저었다. 코를 킁킁거리며 추적해보니 냄새의 발원지는 푸드마켓 뒤 창고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33m²(약 10평) 남짓한 작업실이 나왔다.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에 ‘양천구 김구이 봉사단’이라고 불리는 아줌마 자원봉사자 5명이 있었다.

○ 2년 동안 10만 장의 김을 굽다


김 굽는 기계에선 김이 한 장 한 장 구워져 나왔다. 한쪽에선 이 김들을 10장씩 묶어 봉지에 담고 있었다. 김 굽는 담당부터 김 10장씩 묶기, 묶은 김을 봉지에 담는 일까지 작은 공간에서 한 번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치 도박판 ‘타짜’의 현란한 손놀림을 연상케 했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이곳에 출근해 김을 굽는다. 이렇게 구운 김은 푸드마켓으로 건너 가 양천구 기초생활수급권자 4200가구에 무료로 제공된다. 김과 참기름, 소금 등 재료비(연 300만∼400만 원)는 모두 서울시공동모금회에서 받은 성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봉사단을 꾸린 지는 올해로 2년째. 왜 ‘김’을 봉사 아이템으로 정했을까. 초창기 멤버인 이춘희 씨(62)는 “어른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10년 전부터 동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목욕 봉사 및 반찬 배달 봉사를 해오면서 노인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요리보다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반찬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김이었다. 이 씨는 곧바로 김종순 씨(57)와 함께 김구이 봉사단을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김구이 봉사단 소식을 듣고 무작정 작업실에 찾아온 최정자 씨(54)와 최 씨가 하루 못 나와 ‘대타’로 김을 구웠던 박종득 씨(58)가 합류했다. 이들이 2년 동안 구운 김은 10만 장이 넘는다.

○ 내 자신을 위한 김 굽기


김 씨는 “그냥 김을 구우면 다 탄다”며 “200도 불에 식용유 0.5L, 참기름 250mL의 조합을 잘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을 굽는 데 빠질 수 없는 것이 ‘수다’다. 그중 “처음엔 남편이 ‘김구이 봉사단 꼭 나가야 하냐’며 잔소리를 해 마음고생이 심했다”와 같은 남편 흉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내 진지해졌다. 박 씨는 “평생 자식을 위해 살다 자식들이 결혼해 떠나니 그 마음을 누군가에게 새로 쏟고 싶은 것”이라며 “매주 목요일 ‘내일은 김구이 봉사가 있다’는 문자메시지가 올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그런 이들에게 마음을 담아 김을 구워주고 싶은 상대를 물었다. 대답은 ‘남편’이었다. 왜일까?

“여기서 1000장씩 굽다 집에 가는데 힘이 남아나겠어요? 남편이 눈치 없이 김을 구워달라고 할 때면 화도 버럭 내곤 했죠. 그래도 믿을 사람은 남편밖에 없죠. 하하.”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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