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사건 폭주해 꼼꼼히 챙길 여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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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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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부장판사 소명자료 제출


선재성 광주지법 파산부 수석부장판사는 이번 사건이 불거진 후 법원행정처 감사과정에서 소명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료에는 업무가 폭주해 꼼꼼히 챙길 여유가 없었고, 기업회생 전문가가 드물어 특정 변호사로 일이 몰렸다는 등 대부분 변명이지만 형을 법정관리회사 감사로 선임한 부분에 대해서는 자성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하지만 들끓는 여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 연간 1조 원대 돈 관리


지난해 광주지법 파산부(부장판사 1명, 배석판사 3명)에 접수된 기업회생 사건은 모두 51건. 종전 재판부 재임 때부터 계속 중인 사건도 40건이 넘었다. 특히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침체로 N건설(도급순위 전국 36위, 광주 2위, 자산 6000억 원대), K기업(전국 50위, 광주 3위, 4000억 원대), S철강(1000억 원대) 등이 4월에 쏟아져 들어왔다. 또 이미 회생계획 인가를 받은 S건설(광주 5위, 3000억 원대)과 그 계열 건설사 2곳 등에 대한 회생계획 실행 업무도 발등의 불이었다. 파산부는 제10민사부(가처분 담당)도 겸임해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 후보자 공천무효’ 및 효력정지를 주장하는 가처분사건이 15건이나 접수됐다. 파산부 관계자는 “수많은 관계인 면담과 서류작업 부담에 눌려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했다”며 “매월 수백억 원, 연간 1조 원대의 돈이 현장에서 그대로 집행되는지 혹여 부풀린 대목은 없는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전문변호사 찾기 어려워…”


관리대상 기업의 대규모 자산조사와 자금집행 등을 관리감독하기 위해서는 믿을 만한 전문가를 관리인 및 감사에 선임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기업회생 분야 전문변호사를 찾기가 어렵다. 특히 광주에서는 겨우 3, 4명 정도를 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최근 문제가 된 강모 변호사(50)가 선 부장판사와 고교, 대학 동문인 것은 사실이나 S건설 계열 3개사의 관리인 대리를 맡게 된 것은 이런 차원의 전문가 선임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선 부장판사는 “지나친 특혜를 줬다는 여론이 없지 않았으나 그런 개인적 인연보다는 과거 광주 나산클레프(대형마트) 사건 당시 관리인 대리로 나가 임차인 문제를 잘 해결한 일 등의 전문가 경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해명했다.

▼ “신뢰할 만한 전문가 못찾아… 조바심에 그릇된 결정 내려” ▼
선재성 수석부장판사 “법원 신뢰 금 가게 해 송구”


“사려 깊지 못한 판단으로 법원의 신뢰에 금이 가게 한 데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법정관리기업 감사에 친형과 고교 동기동창 등을 선임해 물의를 빚은 선재성 광주지법 파산부 수석부장판사(49·사진)는 8일 오후 광주 동구 지산동 광주지법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심려 끼친 데 대해 송구스럽기 그지없다”고 밝혔다. 선 판사가 이번 사건이 불거진 후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것은 처음이다.

대법원의 인사조치에 따라 재판업무에서 배제돼 9일 사법연수원으로 파견근무를 떠나는 선 판사는 수일째 계속된 여론의 질타에 다소 수척해진 듯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먼저 친형을 법정관리기업 감사로 선임한 문제에 대해서는 “두말 할 나위 없이 부적절한 결정이었다”며 “현금자산만 400억 원대에 이르는 대형 건설사 관리를 전 사주인 관리인에게만 맡겨 둘 수 없다는 걱정이 앞서 판단을 그르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형이라고 해서 아무런 특혜도 주지 않고 만약 형이 부정한 행동을 한다면 내가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함께 책임을 지면 될 일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고 덧붙였다.

선 판사는 특정 변호사와의 유착 의혹에 대해서도 “구구한 변명으로 들릴까 두렵다”고 전제한 뒤 답변을 했다. 그는 “대형 건설사의 현금관리 실태가 매우 부실하고 위험한 것이 사실 아니냐”고 반문한 뒤 “두 건 모두 그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조바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선 판사는 이어 “수백억 원의 현금이 잠겨 있는 건설업체 관리감독을 위해서는 파산부가 신뢰할 만한 전문가를 찾아 일을 맡겨야 하는데 실제 그런 인물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선 판사는 이번 논란의 핵심인물로 떠오른 광주일고(55회) 동창생 강모 변호사에 대해서도 “강 변호사가 광주지역에서는 드물게 기업회생 전문변호사로 꼽히는 상황에서 공교롭게 내가 파산부를 맡게 되면서 세간의 오해와 의혹을 받게 된 것 같다”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선 판사는 이날 광주지법 회의실에서 조촐한 송별식을 갖고 사법연수원으로 떠났다. 선 부장판사는 애초 송별행사를 극구 마다했지만 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이 도리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송별식에 참석했다. 선 부장판사는 이 자리에서 후배 법관들에게 “재판 당사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송별식장을 빠져나갔다.

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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