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졸업장 받은 ‘흰머리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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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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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주부학교 ‘눈물의 졸업’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서 열린 신명주부학교 졸업식에서 라스 줄리앙 자크 조엘 씨와 양서연 씨, 속 모리다 씨(왼쪽부터)가 수료증과 졸업장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송파구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서 열린 신명주부학교 졸업식에서 라스 줄리앙 자크 조엘 씨와 양서연 씨, 속 모리다 씨(왼쪽부터)가 수료증과 졸업장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송파구
50년 만에 써보는 학사모였다. 10일 오전 10시 반 서울 송파구 마천동 마천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신명주부학교 학생 168명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졸업장을 받았다. 어느덧 나이는 쉰 줄에 접어들었고 그만큼 머리도 희끗희끗해졌지만 들뜬 마음만큼은 50여 년 전 소녀의 심정 그대로였다.

신명주부학교는 이날 초등∼고등과정을 마친 늦깎이 학생들을 위한 졸업식을 열었다. 1973년 개교한 신명실업학교는 배움의 시기를 놓친 주부, 청소년들을 위해 초·중·고교 과정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까지 중학과정 949명과 고등과정 779명의 주부 및 청소년이 뒤늦은 학업을 마쳤다. 이동철 교장(57)은 “한글을 몰라 지하철도 못타던 주부들이 점점 삶에 자신감을 회복하고 졸업할 때 남부럽지 않게 책을 읽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졸업식장에 자리를 잡은 ‘주부 학생’들은 식이 진행되자 그동안 인생 역정이 떠오르는지 점점 감정이 격해지는 모습이었다. 졸업생 대표 양서연 씨(65·여)가 “혼란했던 격동기에 태어나 이제야 소원을 이뤘다. 배우지 못한 설움은 오직 배움으로밖에 극복할 수 없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공부했다. 두 구절 배우고 돌아서면 한 구절 잊어버리는 나이지만, 공부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는 소감을 발표하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양 씨는 이날 학교 전통에 따라 보라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연단에 올랐다. 작은 금은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양 씨는 2년 동안 한 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은 ‘모범생’이었다. 지난해 8월에 치른 대입검정고시에서는 고령자 최고점수를 기록해 검정고시동문연합회로부터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양 씨는 “뒤늦게 글을 배우는 사실이 창피해 2년 전 입학식 때는 차마 참석하지 못했다”며 “선생님들의 따뜻한 배려와 가족들의 응원 덕분에 졸업생 대표로 졸업하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양 씨는 오래전부터 꿈꿔온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를 계획이다.

어머니의 졸업식에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자녀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어머니 이현금 씨(60)를 응원하기 위해 왔다는 오옥주 씨(36)는 “어머니가 학교를 다니면서 정말 많이 밝아지셨다”며 “어머니에게 배움은 이제 스트레스나 콤플렉스가 아닌 삶에 대한 욕망이자 포부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졸업식의 주인공은 주부들만이 아니었다. 신명주부학교는 2007년부터 결혼이민자들을 위한 한글학교를 운영해오고 있다. 이날 한글학교 과정을 무사히 마친 결혼이민자 45명도 함께 졸업장을 받았다. 지난해 4월 한국 여성과 결혼해 한국으로 왔다는 프랑스인 라스 줄리앙 자크 조엘 씨(30)는 아직 서투른 한국말로 “아내의 나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는데 마침 장모님이 한글학교를 추천해주셨다”며 “앞으로 한글 공부를 더 해 한국에서 일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캄보디아에서 온 속 모리다 씨(22·여)는 화려한 분홍색 캄보디아 전통의상을 입고 왔다. 나중에 유치원 교사가 되는 게 꿈이라는 속 씨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이날 속 씨가 준비한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 편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처음에 한국으로 시집을 왔을 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어 너무 답답하고 무서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서툴지만 이렇게 감사의 말을 전할 수가 있게 됐어요. 앞으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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