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간30분간 대피…연평 주민의 긴긴 하루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0일 18시 30분


해병 연평부대의 해상 포사격 훈련이 실시된 20일 9시간30분 가량 대피소에 피신해 있던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긴 하루를 보냈다.

이날 오전 9시 면사무소에서 군 사격 훈련을 알리며 대피 안내방송을 하자 주민들은 집에서 각자 난방에 필요한 이불이나 담요, 전기난로 등을 들고 대피소로 모여들었다.

대피가 완료된 9시50분경 옛 충민회관 뒤편 대피소에는 주민 15명과 공무원 3명, 군·경 4명과 취재진 6명 등 총 28명이 모였다.

주민들은 50㎡가량 되는 대피소 안에 깔린 스티로폼 위에 모포를 깔고 앉아 바닥의 찬기를 막았다. 집에서 각자 챙겨온 이불과 담요를 나눠 덮으며 몸을 따뜻하게 했다.

면사무소가 미리 준비해 둔 전열기구와 주민 1명이 챙겨온 전기난로가 그나마 대피소 내의 한기를 녹여주었다.

연평도에 1곳밖에 없는 편의점인 'GS25' 직원들이 고맙게도 초코파이와 소시지, 사탕, 주스 등을 챙겨와 주민과 군·경에 나눠줬다.

금방이라도 군의 사격훈련이 시작될 줄 알았던 주민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모여 앉아 훈련 시작 시점이나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을 점쳤다.

하지만 연평도 주변에 잔뜩 낀 해무 탓에 사격 훈련은 지연됐다. 시곗바늘이 정오를 향해 달려가자 주민들은 다소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점심을 준비했다.

점심은 컵라면에 김치. 대피소 안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대형 냄비를 올려 물을 끓였다. 면사무소가 구호품으로 보관해뒀던 컵라면이 전 대피소에 전달됐다. 이날 연평도에 있는 모든 사람은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오후 2시경, 각 대피소에 배치돼 있던 군 관계자가 대피소 문 앞에 나와 있던 주민과 취재진을 긴급히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 관계자는 주민들에게 '최대한 대피소 안쪽부터 채워 앉으라'고 요청했다. 만일 북한이 지난번처럼 포격을 가하면 대피소 문 근처에 있는 게 위험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오후 2시까지도 훈련이 시작되지 않아 취소될 줄 알았던 주민들 사이에 일순간 긴장이 고조됐다. 30분 뒤 사격 훈련이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피소 안이 조용해졌고 '쿠웅'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군 관계자의 통제 수위도 극도로 상승해 대피소 바깥출입이 전면 금지됐다. 장시간 대피소 안에 머물러 화장실이 급해진 남자들이 군 관계자의 동행 하에 집단으로 밖에 나가 일렬로 서서 '볼 일'을 보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삭막해진 대피소 안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해병대 출신의 한 주민이 대피소를 통제하던 해병대 간부에게 농을 치기도 했다.

오후 4시경 사격 훈련이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주민들은 누군가가 챙겨온 라디오를 다 같이 들으며 사격 훈련 종료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주민들 얼굴에 그제야 안심하는 빛이 돌았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북한이 추후 도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남우 씨(24)는 "훈련은 끝났지만 북한이 또 도발할지 모르니까 아직 안심이 되지 않는다"라고 걱정했다.

사격 훈련은 끝났지만 오후 6시30분까지 대피소에 대기해야 한다는 면 관계자의 말이 전해졌다. 한 50대 주민(여)의 입에서 "얼른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연평 주민의 긴 하루를 마감하듯 대피소 밖엔 어스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인터넷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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