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청진기 대고 병원놀이 수액소리가 아이 가슴 울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3일 03시 00분


유아환경교재 발품 팔아 만든 워킹맘들

《“자주 짜증내던 아들이 달라지면서 유아(幼兒) 환경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한국환경공단 폐기물부담금팀에 근무하는 박은경 씨(32·여)는 6월 경기 수원시에서 서울 용산구 후암동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한 후 박 씨는 아들 민성현 군(6)이 다닐 유치원을 찾다가 집 근처 A어린이집을 골랐다. A어린이집은 좀 독특했다. 각종 의자, 책상 등 교구를 나무로 만들었다. 뒷마당에 텃밭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에게 식물을 키우게 하고 고구마도 캐게 했다. 민 군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소 민 군은 장난기가 심해 풀이나 꽃을 보면 바로 꺾어 버렸다. 놀이 도중에 과격하게 친구를 때리는가 하면 친구가 자기를 살짝만 건드려도 화를 내는 등 성격이 거친 편이었다. 하지만 친환경교육 후 거친 성격이 사라지고 온순해졌다. 박 씨는 “환경 쪽 업무를 맡고 있지만 플라스틱 제조업체가 폐기물을 버리는 것을 관리하는 업무라 정작 내 아이들의 환경교육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워킹맘’ 박은경 씨와 송정혜 씨, 양인숙 씨(왼쪽부터)가 2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가운동 내 한 어린이집을 방문해 직접 제작한 유아용 환경교육 교재로 재활용품과 환경에 대해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환경공단
‘워킹맘’ 박은경 씨와 송정혜 씨, 양인숙 씨(왼쪽부터)가 2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가운동 내 한 어린이집을 방문해 직접 제작한 유아용 환경교육 교재로 재활용품과 환경에 대해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환경공단
○ “영어공부만 신경… 환경은 무심”

같은 직장에 다니는 송정혜 씨(30·여)는 딸 정서윤 양(3)이 아토피에 걸릴까 봐 늘 걱정이 컸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환경적 요인이 큰 탓에 예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 아이만 깨끗이 키우고 좋은 거 먹인다고 아토피에 안 걸리는 것도 아니잖아요. 본질적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이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중 딸의 어린이집 활동수첩을 봤어요. 환경에 관련된 교육은 하나도 없더라고요.”(송 씨)

이후 송 씨는 우연히 박 씨와 ‘워킹 맘’의 어려움과 교육문제를 이야기하다 유아교육과정에서 환경부문이 취약하다는 점을 토론하게 됐다. 이후 또 다른 직장동료 양인숙 씨(30·여)와 5월부터 유아용 환경교육 교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양 씨는 “아이들의 학습교재나 영어공부에만 신경을 썼고, 환경 교육에는 너무 무심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회원을 모아 6월 초 유아대상 환경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보급을 목표로 하는 학습동호회 ‘자연이야기’를 결성했다.

○ 밤샘 작업으로 만든 ‘홈 메이드’


유아용 환경교육 교재를 만드는 작업은 녹록지 않았다. 국내 환경관련 교육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이뤄진다. 7세 미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환경교육프로그램은 전무한 상태다. 어린이 표준보육과정인 기본생활, 사회관계, 의사소통, 자연탐구 등 6개 과정 가운데 환경과 관련된 것은 ‘자연탐구’ 영역 중 일부에 그치고 있다.

이들은 일단 초등학생용 환경교육교본을 토대로 유아용 환경교육교재를 제작했다. 교재를 활용하기 위해 어린이집을 방문했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대부분 “아이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돼있다”, “어려운 환경문제를 가르치려면 아이들의 흥미를 끌 색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엄마로서 아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며 “내 아이와 이 땅에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환경교재를 만들기 위해 밤을 새웠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시행착오 끝에 일반교재 형식이 아닌 엄마가 집에서 가볍게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일상생활을 환경과 접목하는 방식으로 교재를 만들기 시작했다.

“맞벌이 부부라 주말에 쓰레기를 몰아서 버려요. 제가 쓰레기봉지를 들고 아파트단지 내 분리배출함으로 가면 딸이 버리는 것을 도와줍니다. 딸은 그냥 엄마가 하니까 따라하는 것이지 그 의미를 몰라요. 환경과 관련된 일상을 놀이로 연결하고 이를 교육으로 연결하는 방향으로 교재를 구상했습니다.”(송 씨)

이들은 8월부터 경기 남양주시내 어린이집을 돌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육교사들에게 자문했다. 이후 10월 말에 최종적으로 유아환경교재인 ‘유아환경교육 교수-학습 지도안 모음집’을 책으로 제작해 경기도내 지역보육정보센터 10곳에 보급했다.

○ 놀이하며 환경의식 싹터

엄마들이 직접 자녀들에게 가르칠 만한 환경교육 프로그램은 뭘까? 이들은 ‘분리배출 릴레이’, ‘폐품 악기 만들기’, ‘나무소리 들어보기’ 등을 추천했다. ‘분리배출 릴레이’는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 내 분리배출 장소로 간 후 이어달리기 식으로 유리병, 플라스틱 등을 분리배출 주머니에 넣게 하는 방법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분리배출한 아이에게 상을 준 후 분리배출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폐품 악기 만들기’는 일단 페트병, 깡통, 쓰고 난 나무젓가락 등을 준비한다. 페트병에는 콩을 한줌 넣고 흔들어 소리를 내고 분유통 등 깡통에 색종이를 붙인 후 나무젓가락으로 두드리는 북을 만들어 연주를 하는 방법이다. 폐품도 재활용하면 소중한 자원이 된다는 것을 아이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

‘나무 소리 들어보기’는 아이에게 청진기를 준 후 나무에 대고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아보게 하는 것. 수액이 이동하는 소리를 잘 들으려면 나무껍질이 얇은 나무를 선택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식물도 생물이며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칠 수 있다. 아이들이 색종이를 접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면 신문지 등 폐품을 활용하는 폐품 작품 만들기 놀이도 좋다. 송 씨는 “분리배출 릴레이를 한 후부터 딸이 먼저 ‘그냥 버리면 안 돼요’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양 씨는 “어려서부터 환경교육을 하면 커서도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고 우리 환경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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