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관리-영어몰입 유리” vs “교육효과 지나친 환상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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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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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그러들지 않는 사립초 열풍, 학부모-교육전문가의 생각은…

《18일 입학설명회를 연 서울 A사립초등학교. 학부모 200여 명이 강당을 빼곡히 채웠다. 최근 일부 사립초등학교에서 입학비리가 불거지며 서울시교육청이 감사에 착수했지만 사립초등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열기는 오히려 더 뜨거워지고 있다. 일부 학교의 경우 설명회에 참석하려면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할 정도다.》

대학 입시를 위한 스펙 쌓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학부모들의 사립초등학교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매년 평균 2 대 1을 넘는 사립학교 입학 경쟁률이 올해는 이보다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3년 전 서울 서대문구 경기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이 신입생 입학 추첨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대학 입시를 위한 스펙 쌓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학부모들의 사립초등학교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매년 평균 2 대 1을 넘는 사립학교 입학 경쟁률이 올해는 이보다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3년 전 서울 서대문구 경기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이 신입생 입학 추첨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 B 씨는 “휴가를 내서 설명회에 왔다”며 “이번 주에만 세 군데를 더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국의 사립초등학교는 75곳으로 이 중 절반이 넘는 39곳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

2010학년도 서울지역 사립초등학교 신입생 추첨 경쟁률은 평균 2.4 대 1로 인기가 높은 학교는 7.2 대 1까지 기록했다. 이에 따라 자녀를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려는 엄마들이 모이는 한 인터넷 카페에서는 당첨률을 높이기 위한 각종 방법이 공유되기도 한다. 여러 학교의 대기자 명단에 걸어두기 위해 중복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모든 학교의 추첨일이 같아 추첨 당일에는 한 곳밖에 갈 수 없지만, 결원이 생겼을 때 따로 공고를 하지 않고 지원자에게만 연락을 하는 학교가 많기 때문이다.

또 아이가 아직 학교에 갈 나이가 안 됐지만 추첨 기회를 한 번 더 얻기 위해 동 주민센터에 조기입학을 신청하기도 한다. 올해 당첨이 되면 조기입학하고, 떨어지면 연말까지 조기입학 취소 신청을 한 뒤 내년에 다시 지원하면 되기 때문이다.

사립초등학교에 대한 이 같은 열기는 사립초등학교를 국제중, 특목고, 대학 입학을 위한 사전 단계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자기주도학습전형 및 입학사정관전형이 확대되면서 중요해지는 체험활동, 봉사활동, 독서활동 등 비교과 영역 스펙 관리에 사립초등학교가 더 낫다고 학부모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립초등학교에서는 특화된 교육과정을 제공할 수 있어 정규수업 시간은 물론이고 방과후나 방학 때 공립초등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각종 예체능 활동과 특기적성 활동을 할 수 있다. 1인 1악기 수업을 하거나 수영과 스케이트, 스키 등 스포츠 과목을 강조하는 곳도 많다.

학부모 C 씨는 “사립초등학교는 공립초등학교보다 교사들이 일이 많지 않고 학생 수도 적다 보니 경시대회나 영재교육원 원서도 적극적으로 써준다”며 “유명하지 않은 사립초등학교라도 공립초등학교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립초등학교에서 영어 집중교육을 하는 것도 학부모들의 관심을 끄는 요인이다. 영어몰입교육의 원조인 영훈초등학교는 학급에 원어민 교사와 한국인 교사를 함께 배치하고, 주당 40시간의 이머전(Immersion·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한다. 다른 사립초등학교도 평균 7∼10시간 내외의 영어몰입교육을 수준별로 한다.

대개 분기당 85만∼170만 원의 수업료를 내는 것 외에 영어특성화 교육비로 매월 10만∼20만 원을 내야 하지만 학부모 D 씨는 “조금 비싸긴 해도 공립초등학교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어려운 영어교육을 받으니까 오히려 사교육비도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제2외국어를 필수로 가르치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은 사립학교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을 경고한다.

임성호 하늘교육 기획이사는 “당장은 영어 등에서 효과를 보는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는 사립초등학교 출신이 그리 우월한 결과를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하늘교육이 조사한 ‘최근 3개 연도 서울시내 초등학교 영어 경시대회(성균관대 및 한국수학교육학회에서 주최한 대회에 한함) 수상자 배출 현황’에 따르면, 상위 10위권 학교에 사립초등학교는 경기초(4위), 경복초(5위), 영훈초(6위) 등 세 곳밖에 포함되지 못했다. 수학 경시대회의 경우 상위 10위 안에 든 사립초등학교는 충암초(7위) 한 곳뿐이었다.

어려서부터 높은 수준의 영어, 수학 교육 등을 강조하는 것이 또 다른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사립초에서 영어수업을 따라잡으려면 적어도 영어유치원 1년은 다녀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학부모 E 씨는 “외국에서 살다 온 아이도 많고 대부분 방학 때면 유학을 가서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영어학원을 더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과도한 경쟁심을 유발하고 비교적 넉넉한 가정환경의 아이들만 모이다 보니 인성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임 이사는 “다양한 환경의 아이들이 모여 어울리고 배려하는 마음도 배워야 하는데 사립초등학교 출신 중에는 그렇지 못한 사례가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광양제철 포항제철 임직원 자녀만 입학 가능한 5개교와 서울시립 소년의 집 아이들을 위한 서울 알로이시오초는 제외.
광양제철 포항제철 임직원 자녀만 입학 가능한 5개교와 서울시립 소년의 집 아이들을 위한 서울 알로이시오초는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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