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처형 직전까지 신념 안굽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일 03시 00분


1910년 서울주재 러영사관이 본부에 보고한 외교문서 입수

"프랑스인 성직자(조제프 빌헬름 신부)는 자신의 제자(안중근 의사)에 대해서 말하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안 의사)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1910년 4월 당시 서울주재 러시아총영사관이 안중근 의사에 대해 본부에 보고한 3쪽짜리 외교문서를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을 통해 1일 입수했다. 이 보고서는 1910년 3월 뤼순 감옥을 찾아가 처형되기 직전의 안 의사를 면회하고 서울로 돌아온 빌헬름 신부에게 전해들은 안 의사의 순국 직전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다음은 이 보고서 내용.

《최근 빌헬름 신부는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을 마지막으로 위로하기 위해 뤼순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 방문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인 (당시 천주교 조선교구 수장인 프랑스인 뮈텔) 주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이뤄졌다. (천주교 신자인 안 의사가) 이토를 살해하자 주교는 신문을 통해 안 의사를 비난하면서 안 의사는 이미 오래전 가톨릭 신앙에서 멀어졌다고 주장했다.

그 후 두 통의 전보가 (천주교회로) 왔다. 안 의사가 옛 스승이며 정신적 지주인 빌헬름 신부에게 "죽음을 앞두고 신앙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전보였다. 일본 검찰도 같은 부탁을 했다. (뮈텔) 주교는 흥분해 단호하게 빌헬름 신부에게 "뤼순에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빌헬름 신부는 이런 엄한 위협에도 "자신의 양심의 소리만을 듣겠다"고 선언했다.
(안 의사를 만나고 돌아온) 빌헬름 신부는 안 의사가 솔직하고 격정적으로 살인을 한 데 대한 소회를 털어놓으면서도 끝까지 "애국자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안 의사와 함께 거사에 가담했다가 체포된 우덕순 유동하 의사에 대한) 비밀재판에 성직자 신분으로 입장이 허락된 빌헬름 신부는 법정에서 두 의사의 한결같은 모습과 범상하지 않은 용기에 놀랐다고 증언했다. 두 의사는 변호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안 의사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토를) 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빌헬름 신부는 "일본인들마저 이들 의사들의 용기에 존경을 보냈으며 이들에게 최상의 예우를 했다"고 전했다.

안 의사 거사 이후 (일제와의 갈등을 피하려는) 조선교구 수장 뮈텔 주교의 조심스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있던) 외국인 신부들은 한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본격적인 행동을 시작했다. 일제 헌병이 조선의 한 벽촌 마을에서 저지른 비인도적인 만행을 교회 잡지에 폭로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외국인 선교사들과 일제 사이에 점점 긴장 관계가 높아지고 있다.》

이 보고서에 대해 창원대 사학과 도진순 교수는 "러시아의 공식 외교 문서에 안 의사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당시 러시아령이었던 하얼빈에서 일어났지만 일본에 재판권을 넘겨준 사건이어서 러시아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로부터 이 문서를 전해 받은 정 의원은 "4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한러대화 회의에서 안 의사 서거 100주년을 맞은 올해 러시아가 소장한 안 의사 관련 자료를 공개해 달라는 제안을 했고 러시아가 이를 받아들였다"며 "러시아 정부가 추가 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외교문서는 당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도 읽은 것으로 표시돼 있다.

김기현기자 kimkihy@donga.com

황장석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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