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배설물 치우는 쓰레기 청소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3일 11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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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시달리다 최근 투신자살한 A 부장판사가 자살 전에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를 담은 글을 남긴 것으로 밝혀져 화제다.

A 판사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다니던 교회 게시판에 '판사들의 애환과 직업병'이란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판사는 생산적인 직업이 아니다. 막말로 이야기하면 세상 사람들이 토하거나 배설한 물건을 치우는 쓰레기 청소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진실을 아는 사람은 판사가 아니라 당사자 본인인데, 왜 우리 판사들에게 판단을 하여 달라고 조르는지…"라며 "참 한심한 생각이 절로 든다"고 애환을 털어놓았다.

A 판사는 "판사는 모두 마음 속에 저울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라며 "원고 피고 검사 모두를 의심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심지어 아내와 부모님의 말마저 의심하곤 한다"고 적었다.

그는 "다른 직역과 달리 판사는 올라가면 갈수록, 승진하면 할수록 업무량이 더 많아진다"며 막대한 업무량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그래도 자녀들을 판사 시키겠느냐"고 되물으며 "전 우리 아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살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전 판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해보니까 참으로 보람된 일도 많더라"며 글을 맺었다.

다음은 글 전문이다.
<판사들의 애환과 직업병>
들어가며

판사…
물론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죠.
세간의 농담으로, 의사는 부인과 자식들이 좋고, 검사는 친인척들이 좋으며, 판사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과연 그럴까요?
판사라고 하여 나름대로의 애환이나 직업병이 없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본론

기본적으로, 판사는 생산적인 직업이 아닙니다.
막말로 이야기 하면, 세상 사람들이 토하거나 배설한 물건들을 치우는 쓰레기 청소부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판사는 만능이 아닙니다.
모든 재판사건에 있어서 진실을 아는 사람은 판사가 아니라 당사자 본인들입니다.
자신들이 가장 잘 알면서, 왜 우리 판사들에게 판단을 하여 달라고 조르는지 재판을 하다보면 참 한심한 생각이 절로 듭니다.
또한, 판사는 의심하는 직업이요, 판사들은 모두 마음 속에 저울을 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민사사건에 있어서는 쌍방 거짓말을 하는 원고와 피고 모두를, 형사사건에 있어서는 유죄라고 강변하는 검사와 무죄라고 우기는 피고인 모두를 의심해야만 하는 직업입니다(오로지 의뢰인의 말을 그대로 믿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죽 밀고 나가기만 하는 변호사와는 완전히 딴판이죠).
이러한 의심과 마음의 저울이 법정에서만 국한된다면 다행이지만, 사회생활에서, 대인관계에서, 가족관계에서도 홀연 드러나고, 심지어는 아내와 부모님의 말마저 의심하곤 한답니다.
참으로 한심하고 끔찍한 직업병이죠.
아울러 판사라는 직업은 원고와 피고, 검사와 피고인 모두를 만족시키는 재판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긴 원고는 당연한 것을 이겼다거나 더 못 이겼다고, 진 피고는 이길 것을 판사의 오판으로 못 이겼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검사와 피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다른 직역과는 달리 판사는 올라가면 갈수록, 즉 승진하면 할수록 업무량이 더 많아지는 참으로 묘한 직업입니다.
대법관의 사무실을 방문해 보세요. 응접실 소파에까지 소송기록이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노안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며 대법관들은 밤 새워서 사건기록과 씨름을 합니다.
오직 명예 하나만을 드시기 위하여 고된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감수합니다.

마치며

여러분, 그래도 자녀들을 판사 시키시겠습니까? 전 우리 아이들에 대하여는 판사가 되기를 강권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가 원하는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살기를 바랄 뿐이죠.
그런데 말이죠, 저는 판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해 보니깐 애로와 직업병을 겪기는 하지만, 참으로 보람된 일도 많더라구요.

인터넷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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