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인양]“어머니 수술비 모았어요” 이번달 만기 적금통장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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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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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지난달 26일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한 이후 20일 동안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애태우며 꼭 살아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하는 실종자 가족들의 애절한 사연을 기록해왔습니다. 그러나 온 국민의 기대와 달리 15일 인양된 천안함에서 그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먼저 시신으로 발견된 남기훈 김태석 상사를 포함한 46명의 수병들을 추억하는 가족과 지인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우리를 또 한번 울립니다. 실종자가족협의회는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 ‘산화자’로 인정하겠다고 했지만 그들의 생사가 확인될 때까지 실종자로 표기합니다. 우리는 영웅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 임재엽 중사(26)
임 중사는 천안함에서 ‘해결사’로 통했다. 함 내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나섰다. 후배들을 아우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도 유명했다. 항상 얼굴에는 기름이 묻어 있을 정도로 성실했다. 대전 우송공업대학교 1학년 재학중 휴학 후 군에 입대할 정도로 ‘진짜 사나이’였다. 누나 재선 씨는 그의 미니홈피에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무척 보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임 중사는 실종자 수색작업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 홍웅 씨(27)의 친구다. 홍 씨는 “재엽이 누나와 재엽이가 돌아오면 다시 만나자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며 “재엽이는 정말 착하고 군생활도 열심히 한 친구였는데…. 정말 보고 싶다. 보고 싶다는 말 밖에는 더 나오지가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 손수민 하사(25)
여자친구 김모 씨는 사건 당일 손 하사와 한참 통화를 했다.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전화가 뚝 끊겼다. 늘 그랬듯 손 하사가 다시 전화를 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30분 뒤 TV에서는 천안함 침몰 뉴스가 나왔다. 김 씨와 친구들은 손 하사의 수영 실력을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천안함 축구동아리 회장이었던 그의 축구실력도 하늘로 날아갔다. 친척동생 수빈 씨는 “형. 크고 나서는 형한테 단 한 번도 매달려 본 적이 없는데, 이런 일이 닥치니 이젠 정말 단 한 번만 매달려 떼쓰고 싶다”라며 흐느꼈다. 그가 천안함의 통기(군 통신체계 암호담당) 직별장을 맡은 뒤로는 단 한 건의 보안 사고도 없었다.

■ 심영빈 하사(26)
심 하사는 술을 잘 못했다. 그러나 회식 자리는 빠지지 않았다. 군 동료들은 그에게 목숨처럼 소중했다. 선후임병들은 그를 ‘천안함의 천사’라고 불렀다. 단기 부사관인 심 하사의 전역일은 이미 한참 지났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해 부모님의 짐을 덜어주려고 장기복무를 신청했던 것. 가족들은 “고향과 가까운 동해1함대로 오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지만 심 하사는 “젊었을 때 외지에서 고생을 해야 나중에 좋고, 더 위험한 일일수록 돈도 더 벌 수 있다”며 평택 근무를 고집했다. 강원 동해시 고향 주민들은 “월급을 몽땅 송금하는 효자였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심 하사는 또 다른 실종자인 장진선 하사(22)와 강원 동해시 광희고등학교 선후배다.

■ 조정규 하사(25)
조 하사의 미니홈피 제목은 ‘좀 더 나은 곳으로’이다. 15일 이 미니홈피는 누리꾼들의 애도의 글로 가득 찼다. 누리꾼 배민주 씨는 “좀 더 나은 곳 이곳으로 돌아오세요. 온 국민들이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떠한 무서움도, 추움도, 고통도 당신을 잡으려 하지 못할 것”이라고 적었다. 후임 이용관 씨는 “조 하사님, 박보람 하사님이랑 빨리 나오셔야 하지 않습니까. 거기 많이 춥잖아요…”라고 적어 놨다. 조 하사는 초임 하사일 때부터 소속 부대장 표창을 받을 정도로 모범 군인이었다. 당직근무가 아닐 때도 기관조종실과 가스터빈실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봉급을 쪼개 형의 학비도 뒷바라지할 만큼 우애도 깊었다.

■ 방일민 하사(24)
방 하사는 경기 김포시 양촌면 학운리 마을에서 효자로 통했다. 형편이 어렵던 집안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2007년 3월 해군 214기 조리하사로 입대했다. 방 하사는 천안함 장병들에게 든든하게 밥을 챙겨주는 ‘어머니’였다. 그는 휴가 때마다 어머니에게 자신의 음식 솜씨를 검증받기도 했다. 남동생만이 지키고 있는 방 하사의 집은 김포시의 개발계획에 따라 헐리지만 가족들은 아직 이주대책도 세우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생 동민 씨는 이렇게 말했다. “형. 이제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죄스러워서 정말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우리 엄마 어떻게 할 거야. 몰래 화장실 가서 눈물 흘리는 우리 아빠 어떻게 할 거야. 이렇게 가 버리면 엄마 아빠 어떻게 할 거냐고….”

■ 조진영 하사(23)
조 하사는 고향에서 효자로 통했다. 올여름에는 부산에서 홀로 지내시는 아버지께 모아둔 돈으로 에어컨을 사드리려고 했다. 주변 동료들에게도 “열심히 군 생활을 해서 포상금을 받으면 아버지에게 ‘시원한 선물’을 드릴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해군 부사관 217기로 입대한 조 하사는 부대 안에서도 ‘똑똑한 군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2008년 부사관 능력평가 이론시험에서는 100점을 맞았다. 그래도 조 하사는 만족하지 않았다. 포술능력평가도 최고점을 받겠다며 불철주야 공부하는 등 후임병들의 모범이 됐다. 부산의 이웃 주민들은 “정말로 착한 효자였습니다. 빨리 구조를 했으면 벌써 살아와 부산 집에 왔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 차균석 하사(24)
“형. 이제는 보내줄게. 내가 형한테 철없이 덤비고 까불고 그랬던 거…. 왜 그랬는지 모르고 있었지? 형이랑 같이 놀고 싶어서, 형하고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형한테 관심 받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이제 알겠지? 형, 잘 가. 진짜 내가 가장 사랑하고 믿었던…. 우리 형. 안녕.” 제주도 사나이 차 하사는 동생 균진 씨에게 늘 커다란 ‘나무’였다. 차 하사가 서귀포중을 다닐 때 담임 오순길 씨(42)는 “눈빛과 머리색이 갈색이라 ‘브라운’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기억했다. 학교 밴드부에서는 트럼펫도 잘 불었다. 부사관 월급을 받으면 후배들부터 챙기고, 집에서 농사지은 감귤을 동료들과 함께 나누던 자상한 수병이었다.

■ 문영욱 하사(23)
문 하사는 2007년 9월 홀어머니를 여의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학비를 벌려고 6개월 뒤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문 하사의 외삼촌은 “어렸을 때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고생만 하던 영욱이가 ‘살길을 찾겠다’며 입대한 지 1년 만에 사고를 당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친구 이주현 씨도 슬픔에 못 이겨 문 하사의 미니홈피에 글을 남겼다. “네가 없었다면 난 어떻게 되어 있을까.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했다. 매일매일 생각하고 있단다. 아직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는데…. 너무나 후회되는 것이 많구나. 너희 어머니 보내드리고 널 지킬 거라고 약속했는데…. 약속도 못 지켰는데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소중한 친구야.”

■ 이상준 하사(20)
위로 누나 두 명이 있는 이 하사는 어머니 김미영 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늦둥이 아들이다. 2008년 12월 해군 부사관 219기로 입대한 늦둥이가 처음으로 군복을 입고 나타났을 때 김 씨는 늦둥이가 무척이나 대견하고 뿌듯했다. 천안함 장병들의 사격 능력을 높이는 데 일등으로 공헌한 주인공이 바로 아들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아주 반가웠다. 험한 해군 함정에서 생활하는 아들의 모습을 본 뒤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늠름한 아들이 늘 자랑스러웠다. 이 하사는 동의대 특수체육학과를 다니다 직업군인의 길을 택했다. 김 씨는 “그렇게 좁은 배에서 생활하다가 이런 변을 당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 서승원 하사(21)
지난해 3월 해군 부사관 222기로 입대한 서 하사는 첫 근무지가 천안함이었다. ‘기관부 생활반장’으로 통했던 그는 후임병들의 어려움을 돌봐주는 친형 같은 존재였다. 그를 따르며 힘든 군 생활에서 희망을 품는 장병도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서 하사의 휴대전화는 한때 모든 실종자 가족들의 ‘희망’이었다. 서 하사 아버지가 그에게 통화를 시도한 사실이 실제 통화를 나눈 것으로 와전됐기 때문이다. 한때 희망으로 가득 찼던 평택 2함대 실종자 가족 대기실은 소문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자 이내 울음바다가 됐다. 어머니 남봉임 씨(45)는 “하나뿐인 아들을 시커먼 물 밑에 두고 어떻게 내가 밥을 먹을 수 있겠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 서대호 하사(21)
서 하사는 입버릇이 있었다. “남자로 태어났다면 육군 말고 해병대 정도는 가야죠”라고 늘 말했다. 해병대는 못 갔지만 지난해 9월 해군 부사관 224기로 입대하며 서해를 지켰다. 내연 부사관으로 기관실에서 힘들게 일했지만 매사에 긍정적이었다. 원래 천안함을 타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대천함’을 탈 예정이었는데 이 배가 출동을 가는 바람에 자리가 비는 천안함을 대신 타게 됐다. 그는 오락시간에 승조원들을 기쁘게 하는 천안함의 가수이자 분위기메이커였다. 어머니 안민자 씨는 “우리 아들은 평택으로 간 지 보름밖에 안 됐다”며 “가끔 육지에 나와서도 돈 쓸 일이 없다고 ‘엄마 아빠 다 가지세요’라고 했던 아들인데…”라며 오열했다.

■ 김동진 하사(19)
김 하사는 뇌종양 수술을 받은 홀어머니 홍수향 씨(45)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지난해 9월 해군 부사관 224기로 입대했다. 고향인 부산의 이웃들은 “쥐꼬리만 한 월급을 어머니의 치료비와 생활비로 몽땅 드렸던 효자였다”고 입을 모았다. 한 달 용돈 10만 원을 쪼개 유니세프와 복지관에 기부도 했다. 매주 교회에 나가 봉사활동도 했다. 그는 “어머니와 자신이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짓는 것이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김 하사가 실종되자 어머니는 “우리 새끼 자다가 갔대요. 자다가 가면 고통도 없다는데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흐느꼈다. 휴가를 나오면 항상 정복을 입고 동네 인사를 다닐 정도로 해군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다.

■ 박보람 하사(실종·24)
박 하사는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 박영이 씨(48)를 항상 걱정하던 소문난 효자였다. 충남 아산시 출생으로 2008년 6월 해군 부사관 219기로 임관해 그해 11월 천안함에 부임했다. 동료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웠다. 입대 직전 어머니에게 14K 금반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마지막 휴가를 나왔을 때 “다음 달에 적금 600만 원을 타요. 약을 지어 드세요”라는 말을 어머니에게 남겼다. 어머니 수술비로 쓰려고 부은 정기적금의 만기가 4월이었다. 유족으로는 박 하사가 항상 자신보다 먼저 챙기던 부모와 남동생이 있다. 어머니 박 씨는 “너무 작아 새끼손가락에만 겨우 들어가지만 아들이 준 이 반지를 평생 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장진선 하사(실종·22)
장 하사가 다니던 한국항공전문학교 항공정비과 친구들에 따르면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아 통장에는 늘 100만 원가량의 잔액이 있었다. 소형선박조종사 등 국가기술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던 학구파였다. 2008년 12월 해군 부사관 219기로 입대한 그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친구’였다. 자취를 같이한 친구 전범석 씨는 “5월에 휴가를 나오면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가기로 약속했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여동생 진희 씨는 그의 미니홈피에 “오빠 빨리 와. 나 무서워. 오빠 기다리는 사람들 이렇게 많은데 안 오면 진짜…. 제발 기도할게. 꼭 돌아와 빨리”라고 썼다. 주인을 잃어버린 장 하사의 미니홈피 제목은 ‘기다려라 다시 돌아온다’이다.

■ 박성균 하사(실종·21)
“인양 끝나고 함미를 열면 짠하고 나올 거지? 적당히 하고 빨리 나온나.” 친구들은 박 하사의 미니홈피에 이렇게 적었다. 박 하사는 지난달 11일 “간다. 담에 보자. 5년 뒤에 만나자. 다∼∼같이”라고 미니홈피에 마지막 일기를 썼다. 친구 표하림 씨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박 하사의 사진을 올려놓고 “성균이 밥 한 끼라도 못 먹으면 미치는 아이인거 너네도 다 알잖아. 아직 너무 어리다 아이가…. 살아있제? 배고파 죽을 것 같아서 지금 발 동동 구르고 있제? 특유의 네 말투. 네 웃음소리 너무 그립다 아이가”라고 적었다. 지난해 9월 해군 부사관 222기로 입대해 천안함이 첫 근무지였던 박 하사는 틈틈이 전문서적을 공부할 정도로 자기계발에 열정적이었다.

천안함가

(1절)
우리는 피 끓는 대한의 남아
젊은 바다 사랑하여 여기 모였다
거친 파도 몰려와 우릴 덮쳐도
굳세게 전진하여 싸워 이긴다
우리는 자랑스런 천안함 용사
싸우자(싸우자) 이기자(이기자)
무적 천안함

(2절)
우리는 정의로운 천안함 용사
조국 해양 지키고자 여기 모였다
우리 바다 넘보는 자 어느 누구도
부릅뜬 우리 눈을 죽일 수 없으리
우리는 자랑스런 천안함 용사
싸우자(싸우자) 이기자(이기자)
무적 천안함


▲동영상=처참한 함미…그들은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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