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지명, 그냥 붙인게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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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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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방재청 3989곳 분석
雪云洞-雪梅里엔 눈폭탄… 水項里-合江里엔 물폭탄
눈지명 경기-강원 밀집… “재해 예방에 활용할 것”

춘삼월인데도 2004년 3월 4일부터 이틀 동안 내린 폭설로 충북 충주시 살미면 설운동(雪云洞·21cm), 경북 봉화군 상운면 설매리(雪梅里·25cm)에 피해가 발생했다. 2006년 7월에는 강원 평창군 진부면 수항리(水項里)와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合江里)에 홍수가 나 주민들이 피해를 봤다. 지명에 눈(雪)이 들어간 곳에 설해가 발생했고 물(水)이 들어간 곳에 홍수가 났던 것.

소방방재청 산하 국립방재연구소는 이처럼 지명과 재해가 일정 부분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17일 밝혔다. 연구소는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일제강점기인 1912∼1918년에 제작된 지형도에 나온 남한 지명 3989곳을 분석한 결과 지역별로 각종 자연재해 특성이 반영된 지명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해일을 뜻하는 낭(浪)은 경기 파주 조랑포(현 장단면 거곡리 일대), 옹진 도랑도 등 경기지역(13곳)이 가장 많았다. 조랑포 일대는 1996년과 1999년 두 차례 수해가 발생했다. 피해면적이 두 번 모두 460ha(약 140만 평)로 인근 지역보다 피해가 컸다.

폭우 피해를 의미하는 홍(洪)은 강원 인제군 홍가곡(현 서화면 장승리), 홍천군, 충남 홍성군 홍주교, 충남 청양군 홍골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홍가곡을 포함한 인제 일대는 2006년 7월 폭우로 4500여억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해 당시 전국에서 피해 규모가 가장 컸다.

강원 설악산이 대표적인 눈(雪) 지명은 경기와 강원에 각각 17곳과 14곳이 있었다. 강원 영월군 설운재, 경기 포천시 설운리, 파주시 설마리 등이 대표적 지명이다. 한글 지명도 있다. 경남 고성군 마안개, 경남 거제시 외안개 등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 곳에는 아예 지명에 ‘안개’가 들어 있다. 염해(鹽害)가 반영된 지명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와 남해를 끼고 있는 충남(10곳), 전남(9곳), 경기(9곳) 등으로 나타났다.

연구소가 지명이 재해 발생과 일정 부분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은 향후 택지나 산업단지 조성 등 개발 사업을 추진할 때 지명과 연관 있는 재해를 예방하는 조치가 우선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심재현 국립방재연구소 방재연구실장은 “옛 문헌에 나오는 지명은 해당 지역이 경험했던 자연재해가 반영된 경우가 많다”며 “이를 재해 발생 현황과 연계해 자료화하면 지역별 재해예방 사업을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해 예방사업을 진행하면서 해당 지역의 옛 이름에 안개가 들어있으면 교통시설에 안개등을 추가 설치하겠다는 뜻. 박연수 소방방재청장은 “재해에 강한 나라가 되도록 정확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대책을 세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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