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4조원대 다단계 사기 핵심간부 검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일 03시 00분


피해액 ‘제이유사건’ 2배… 대표는 中 도피
밀항때 경찰관계자 매수 여부 재조사할듯

지난달 30일 오후 10시 10분경 서울 강남구 도곡동 B병원 인근에서 경찰이 지나가던 한 남성에게 불심검문을 하며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남성은 곧바로 도망쳤다. 50m 정도 그를 추격한 경찰은 신분증을 받아내 신원을 조회했다. 그는 1년 3개월 동안 잠적했던 국내 최대 다단계 사기사건의 핵심 인물로 밝혀졌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2008년 다단계업체 ㈜리브의 경영고문으로 4조 원대의 다단계 사기를 주도한 김모 씨(43)를 붙잡아 사건을 맡은 충남 서산경찰서로 신병을 인계했다고 31일 밝혔다.

김 씨는 ㈜리브 회장인 조희팔 씨(53)와 함께 의료기구 임대업체 등 다단계 업체 10여 곳을 운영하며 고수익을 미끼로 전국에서 투자자 4만∼5만 명을 모집해 약 4조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씨는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2004년부터 거의 매년 회사 이름을 ‘씨엔’ ‘챌린’ 등으로 바꿔가며 별개의 회사인 것처럼 운영했다. 김 씨는 그중 하나였던 ‘티투’라는 회사의 대표이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 사상 최대 규모 다단계 사기

이 사건의 피해금액은 최대의 다단계 사기였던 2004년 ‘제이유(JU)그룹 사건’의 2배에 이른다. 지난해 말까지 조사받은 인원만 300여 명이고 30여 명이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조 씨 등은 2004년 대구에 골반교정기와 찜질기, 공기청정기 등을 빌려주는 ‘BMC’라는 의료기구 임대업체를 차리고 부동산 사업 등을 벌이며 투자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은 허무맹랑한 고수익을 약속하는 대신 매주 소액의 이자를 꼬박꼬박 돌려주면서 연 48%의 수익률을 맞춰 투자자들의 신임을 샀다. 사업이 커지자 부산과 서울, 경기, 인천, 충남 등지에 비슷한 회사와 지사를 차리고 투자자들 가운데 직원을 모집했다. 그들에게 “다른 투자자를 유치해 오면 내부 직급을 높여준다”며 친척과 지인들까지도 끌어들이게 했다.

이들은 후발 가입자의 돈으로 기존 회원의 이자를 메워주는 방식으로 사기 행각을 계속했다. 하지만 업체의 수익사업은 제자리인데 이상하게도 투자자들은 계속 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2008년 9월 수사에 착수했다. ㈜리브의 서산지사를 압수수색하자 22개의 유령지사와 유령수익의 실체가 드러났다. 경찰은 수사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느낀 조 씨와 핵심 간부들은 잠적했고 2008년 10월 경찰은 이들 9명을 지명수배했다.

○ 대표는 중국 밀항, 간부들은 잠적

조 씨 등은 같은 해 12월 10일 해경의 추적을 따돌리고 중국으로 밀항했다. 해경은 밀항계획을 미리 포착했지만 조 씨의 신원을 ‘마약사범’으로 오인하는 바람에 작전을 잘못 짜 눈앞에서 범인을 놓쳤다. 소형 보트를 타고 서해 공해까지 나간 조 씨는 다른 배로 옮겨 타고 중국 공해를 넘어 유유히 사라졌다.

지난달 30일 잡힌 김 씨는 조 씨와 함께 밀항해 탈출하려 했으나 파도가 높아 실패한 뒤 국내에서 도피생활을 해왔다고 경찰은 전했다. 김 씨는 도피에 앞서 당국의 수사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전문 브로커 2명을 5억 원을 주고 고용해 해경과 경찰 관계자에게 뇌물을 뿌렸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이 브로커들을 붙잡아 조사했지만 이들은 “관련 정보만 들었을 뿐 경찰에 금품을 건넨 적은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지난해 5월 말경 1차 수사를 마무리했던 경찰은 김 씨를 대상으로 조 씨의 행방을 추궁하는 한편 조 씨의 밀항 과정에서 경찰 관계자를 매수해 도움을 받았는지를 조사할 예정이다. 김 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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