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추억 흐르는 클래식감상실로 오세요”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대구그랜드심포니 박향희 단장, 화전동 ‘녹향’ 살리기 나서

클래식음악 감상실인 ‘녹향’에서 대구그랜드심포니오케스트라 박향희 단장(오른쪽)이 주인인 이창수 옹과 다정하게 서 있다. 정용균 기자
클래식음악 감상실인 ‘녹향’에서 대구그랜드심포니오케스트라 박향희 단장(오른쪽)이 주인인 이창수 옹과 다정하게 서 있다. 정용균 기자
“‘녹향’을 살리려는 지역 음악인과 시민들의 정성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0여 년간 음악 인생을 통틀어 음악과 삶, 본질과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24일 오후 5시 대구 중구 화전동 클래식음악 감상실인 녹향. 이곳에서 만난 사단법인 대구그랜드심포니오케스트라 박향희 단장(45·여)은 “대구시민 모두가 이번 음악감상회의 주인공이었다”며 활짝 웃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클래식음악 감상실로 알려진 녹향을 살리기 위해 17일부터 21일까지 곽승 대구시향 상임지휘자 등 5명이 ‘1일 DJ’로 나서 음악감상회를 열었다. 이들은 클래식을 직접 들려주고 해설도 곁들였다. 60여 년간 녹향을 운영해 온 이창수 옹(89)은 이 기간 매일 실내악 반주에 맞춰 ‘선구자’를 열창했다. ‘마에스트로, 녹향으로 가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행사를 기획한 박 단장은 이번 음악감상회 성공의 숨은 주역.

그는 “첫 숟가락에 배가 부르지 않은 것처럼 이제부터가 중요하다”며 “음악회 기간 중 녹향을 찾아 준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이어가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녹향 살리기 2탄’을 준비 중이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12월 말부터 지역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교실을 이곳에서 열 계획이다. 클래식음악을 들려주고 악기소리 등을 체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클래식교실에는 그랜드오케스트라의 단원 20여 명이 참여할 예정. 그는 또 녹향이 지역의 클래식 동호인의 모임 장소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는 녹향이 운영난으로 문을 닫을 상황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을 찾아와 고민을 하면서 이 옹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지역 음악인과 지인 등의 아름다운 마음을 모아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녹향을 살려보자는 취지로 기업 협찬도 정중히 사양하고 각자가 지닌 작은 능력만으로 이 행사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행사의 수익금 333만 원을 이 옹에게 전달했어요. 하지만 이 돈으로 녹향의 1년치 임차료를 지불하면 끝입니다. 하루 10명도 안되는 손님으로는 이곳을 꾸려 나갈 수가 없어요. 클래식 애호가들이 늘 붐비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는 이어 “가슴 뛰게 행복하고 소중했던 5일간의 음악감상회는 모든 순간이 아름답고 소중했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감동적이었던 몇몇 사례는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음악회 기간 중 지휘자와 동행한 분들이 자발적으로 입장권을 구입해 초대권 없애기에 동참했으며 한 공무원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일’이라며 5만 원을 내놓기도 했다는 것이다. 녹향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이 옹이 평소 보관해온 음반 400여 장으로 문을 열었다. 6·25전쟁 중 국내 문인과 예술가들이 찾는 명소로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이 옹은 “녹향에서 보냈던 지난날의 소중한 기억이 떠올라 가슴에서 아련하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녹향을 보존해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