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취학땐 방과후 돌볼 사람 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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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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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기획위 저출산 대책 문제점은 없나

① 만 5세 취학?
학계 “학습능력 취약” 2년 전에도 반발로 무산
② 재원없는 제안
다둥이부모 정년연장 등 기업들에 짐 될수도
③ 사회적 합의는
‘임신학생 자퇴’ 철폐 여성-교육계와논의 필요

《미래기획위원회가 제시한 저출산 대책은 신선한 아이디어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무리한 제안이 많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상당수 제안이 실질적인 출산 장려로 이어지기보다는 정책 혼선이나 예산 부족으로 좌초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취학연령을 낮추는 방안은 2007년 참여정부가 청년 취업을 위해 발표한 정책을 저출산 대책으로 재탕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 취학연령 1년 당김, 실효성 논란

현재 만 6세인 취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자는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만 5세에 유아학교 의무교육을 시행하는 네덜란드나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시행하는 영국 등 일부 선진국의 사례를 들어 취학연령을 낮추자는 제안은 간간이 제기돼 왔다. 참여정부가 2년 전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내놓은 ‘비전 2030’(이른바 2+5 전략)에도 포함돼 있다. 당시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방안’ 또는 ‘초등학교 유아학년제(K학년) 도입’을 통해 만 5세부터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학제개편 방안이 논의됐지만 학계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미래위는 만 5세가 취학하면 현재 유상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대신 무상인 초등학교에 가기 때문에 학비가 줄어 출산율이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들의 반응은 오히려 반대다. 종일반이 마련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대신 오전에 수업이 끝나는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면 방과 후 보육 부담이 오히려 커진다는 것이다. 만 2세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 이한원 씨는 “아이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기고 퇴근하면서 데려오면 30만∼40만 원이 들 텐데 초등학교에 보내고 오후에 돌봐 주는 사람을 쓰려면 100만 원이 넘게 들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에 1년 일찍 들어가면 연쇄적으로 유아 사교육도 1년 앞당겨져 사교육비 부담이 줄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많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만 5세 취학이 시작되는 학년도에는 만 5세와 6세가 한꺼번에 입학하게 돼 교육시설이나 교사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입시경쟁에까지 파장이 미칠 수 있다. 교육과정을 전면 개정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교육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가족부로 이원화돼 있는 만 3∼5세 교육 문제도 재조정해야 한다.

교육학적 측면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거세다. 유아교육과 교원단체 등 18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유아교육대표자연대는 “몇 년 전 조기입학이 사회적으로 유행했지만 결국 아동의 학습능력이나 적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최근에는 입학을 늦추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유아들의 학습 경쟁에 대한 우려나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검토 없이 경제적으로만 접근한 취학 연령 단축 제안은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예산 확보 없이 효과 있을까

미래위의 발표가 구체적인 정책이 되려면 재원 확보라는 과제가 남았다. 이번에도 각 부처에서 다양한 대책이 보고되었지만 상당수가 예산을 이유로 최종 보고서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위의 발표에는 세 자녀 이상 부모의 정년 연장, 정규직 시간제 근로 형태 확산, 직장 내 보육시설 설치 장려 등 다양한 ‘일·가족 양립 정책’이 포함됐다. 모두 기업들의 참여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정부가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지 못한 채 기업들에 재정 부담을 떠넘길 경우 오히려 여성 고용을 꺼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삼식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2016년이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기업도 장기적인 투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면서도 “정부가 기업을 규제하기보다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가야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낙태 줄이기 캠페인’ ‘아이 낳기 운동’ 등 출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개선하려는 방안도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초 복지부는 미혼모 지원을 위해 기초생활보장을 통한 생계지원, 미혼모자 거주지 지원 등을 추진했으나 내년도 예산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박수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혼모의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편견 등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 낙태를 단속할 경우 여성에게 이중의 고통을 주는 것”이라며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관 협의 및 사회적 합의도 관건

취학 연령 부분에 대해 교과부는 일단 TF를 꾸려 미래위의 제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유아교육 선진화 방안과 9월 학제 검토 등 중장기적인 유아 교육 종합대책을 마련하는 상황이라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만 5세에 투입됐던 예산을 어디에, 얼마나 투입할지를 두고 교과부와 복지부 사이에 ‘교육이냐, 보육이냐’의 해묵은 논란이 격화될 수 있다. 다자녀 가정에 대한 취업이나 학비 지원 역시 예산과 대학의 협조가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공공부문부터 다자녀 부모의 정년을 연장한다고 하지만 자녀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정년을 늘려 주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미지수다. 낙태 줄이기 캠페인이나 청소년 임신 시 자퇴 강요 철폐 등도 여성계나 교육기관과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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