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진주’ 잘 닦으니 재능이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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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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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잠재력 개발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이 전기전자공학과에서 로봇 연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진학하려는 학과를 미리 둘러보는 시간도 보냈다. 저녁 시간에는 대학 및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습 조교와 함께 공부하며 궁금증을 풀었다. 사진 제공 포스텍
‘포스텍 잠재력 개발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이 전기전자공학과에서 로봇 연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진학하려는 학과를 미리 둘러보는 시간도 보냈다. 저녁 시간에는 대학 및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습 조교와 함께 공부하며 궁금증을 풀었다. 사진 제공 포스텍
高2, 3학년 선발 한달간 교육
포스텍 잠재력 개발 프로그램

■ 어떻게 교육하나
방사광 가속기-저명인사 특강
리더십-창의력 적극 발휘하게

■ 기대효과는…
공부재미 생기고 목표도 뚜렷
포스텍 지원 13명 중 4명 합격
○ 특별한 여름방학 캠프

서울에 사는 고2 S 양(17)의 올여름은 참 특별했다. S 양은 중1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뒤로 어머니가 생계를 꾸리셨다. 일에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을 돌보는 건 S 양의 몫. 생물학자의 꿈은 늘 가슴속에서 꿈틀댔지만 호기심을 충족할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생물 시험 성적은 늘 학교에서 1등이었다.

6월 담임선생님은 S 양에게 “이번 여름방학 때 포스텍에서 공부하지 않을래?”라고 물으셨다. 선생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S 양은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포스텍 입학사정관이 학교를 다녀간 후 며칠 동안은 괜한 걱정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방과 후에 담임선생님이 조용히 귀에 대고 말했다. “너 됐대.”

포스텍으로 떠나던 7월 24일, 어머니와 동생이 걱정됐지만 기대가 더 컸다. 어머니는 “주눅 들지 말고,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 하면서 딸에게 미안한 눈빛을 보냈다. S 양은 일부러 더 크게 웃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꼭 잘하고 올게요.”

S 양은 8월 22일까지 포스텍 기숙대학에 머물며 전국 각지에서 온 2학년 친구, 3학년 언니 오빠 42명과 어울려 4주를 보냈다. 유명 교수님한테 직접 수업을 듣고, 대학생·대학원생 조교 언니 오빠의 도움으로 교과서에서만 보던 실험도 손수 해봤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포스텍에만 있는 방사광 가속기도 견학했다. 금난새 씨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공연도 보고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로 우정도 키웠다. 백성기 포스텍 총장을 비롯한 저명인사로부터 리더십 특강도 들었다.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는 친구들과 ‘형편은 어렵지만 꼭 꿈을 이루자’며 우는 날도 있었다.

프로그램 막바지에 부모님 초청 행사로 딸을 만난 어머니는 평소에도 자랑스럽던 딸이 한 뼘 더 큰 듯한 기분이 들었다. 4주 동안 S 양을 지켜 본 교수들도 생각이 같았다. ‘수학 A+ 모든 면에서 뛰어난 학생, 적극 추천함’ ‘과학 A+ 수업참여도 우수, 적극적이고 창의력이 매우 뛰어남’ ‘생활 A+ 밝고 활발하며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신뢰가 높음’. S 양은 ‘후년에는 꼭 조교로 이 프로그램에 다시 참여하겠다’고 생각하면서 학교로 돌아갔다.

○ “기회 주자 목표 생겨”

포스텍은 6월 일선 고등학교에 공문을 보내 2, 3학년을 대상으로 프로그램 참가자를 모집했다. 40명 선발에 지원자가 500명도 넘었다. 참여자를 선발하기 위해 입학사정관이 직접 학교를 방문해서 꼼꼼히 학생을 관찰했다.

최종 선발 인원은 당초 계획보다 3명 많은 43명. 고교 교장 출신인 김창재 입학사정관은 “점수로 잘랐다면 40명에서 끊을 수 있었겠지만 학생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면서 소질이 눈에 보여 도저히 안 뽑을 수가 없었다”며 “학교에 있을 때 ‘대학에서 이런 학생을 좀 도와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손으로 직접 도울 수 있어 보람찼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띈 변화는 목표의식. 김무환 포스텍 입학처장은 “처음에는 하루에 수업을 듣는 6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학생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는 학생이 늘었다”며 “나중에는 공부 그만하고 들어가서 쉬라고 할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A 군(18)도 “공부는 무언가 직업을 가져서 편하게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공부가 나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부하는 게 즐겁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목표의식의 바탕은 ‘기회’였다. 프로그램에 화공과 조교로 참여했던 임창용 씨는 “이 친구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며 “과외를 해 보면 집에 돈도 있고, 이미 기회가 있는 학생들은 수동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친구들은 참 적극적이라 더 신나서 함께했다”고 말했다.

목표가 분명해지면서 포스텍에 대한 고마움도 커졌다. 캠프에 다녀간 뒤 성적이 크게 올랐다면서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내온 학생도 있다. 손성익 포스텍 입학사정관실장은 “지금 실력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잠재력을 갖춘 학생이다. 이런 학생이 학교에 대한 애정까지 갖췄는데 어떻게 안 뽑겠느냐”고 말했다.

포스텍은 ‘교육 기회 불균등 문제 해소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더욱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돈이 문제다. 포스텍은 이번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7000만 원을 썼다. 참여 인원을 늘리고 싶어도 한계에 부닥치는 이유다. 또 포스텍 입학이 100%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3 학생에게 여름방학 4주를 투자하라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일정을 3주로 줄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학생들 수준차를 감안해 수준별로 그룹을 나누는 방안도 대안으로 나온 상태다.

김무환 처장은 “이 프로그램은 단기간에 성적으로 학생을 평가해 이미 준비된 학생을 뽑는 방향에서 장기간 동안 잠재력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입시 전형을 바꾸겠다는 것”이라며 “포스텍에 꼭 오고 싶지만 기회 부족으로 실력이 부족한 학생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 잠재력을 증명하면 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그램 참여 학생 중 13명(2학년 1명 포함)이 내년도 포스텍 신입생 모집에 지원해 4명이 최종 합격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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