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터디/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디스트릭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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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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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 오만… 차별… 인간이라는 이름의 ‘괴물’

《아, 이것은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충격적입니다.
외계인을 소재로 한 SF 영화 ‘디스트릭트 9’.
이 영화가 외계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태껏 수많은 미국 할리우드 영화들이 보여줬던 상상력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버립니다.
여기에 나오는 외계인은 ‘맨 인 블랙’의 외계인처럼 인간 속에 숨어 살아온 내밀한 존재가 아닙니다.
‘화성침공’ 속 외계인들처럼 지구정복의 야욕을 불태우는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존재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E.T.’에 등장하는 앙증맞은 꼬마 외계인처럼 지구인들의 영원한 친구도 아니지요.
어느 날 우연히 외계인들이 ‘떼’를 이뤄 지구에 당도하게 된 이후의 사건을 모큐멘터리(가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가 외계인을 바라보는 관점은 단 한 단어로 집약됩니다. 바로, ‘쓰레기’이지요.》
[1] 스토리라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의 도시 요하네스버그에 거대 우주선이 불시착합니다. 우주선에서 100만 마리(?)가 넘는 외계인들이 몰려나오지요. 아, 외계인들은 바퀴벌레 같은 해충을 닮은 흉물스러운 모습입니다. 인류는 외계인관리국(MNU)이란 전담기관을 만들고, 일단 외계인들을 도심 ‘9구역’에 격리 수용합니다.

그 후 20년이 지납니다. 200만 개체 가까이 불어난 외계인들은 크고 작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원흉이 됩니다. 먹을 것을 찾아 거지처럼 쓰레기더미를 뒤지던 외계인들은 각종 기물을 파손하고 인간들과 시비가 붙으면서 폭행을 일삼기도 하지요. 격리 수용한 외계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인류의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격렬한 시위를 벌입니다.

혼란을 틈 타 외계인을 등쳐먹는 인간들도 생겨납니다. 그들은 외계인들에게 고양이 먹이용 통조림(외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을 제공하는 대가로 외계인들의 무기를 빼앗지요. 하지만 무기는 이상하게도 외계인들의 손이 닿아야만 작동을 하는지라, 무용지물입니다.

결국 인류는 골칫거리로 전락한 외계인들을 교외로 집단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곤 MNU 소속 ‘비커스’를 책임자로 임명하지요. 소심한 성격에다 평범한 가장인 비커스는 자신이 벼락출세를 한 줄 알고 환호작약(歡呼雀躍)하지만, 우연히 외계물질이 몸에 닿으면서 외계인처럼 신체가 변형되는 고통을 겪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커스는 한 외계인 부자(父子)가 우주선을 다시 움직여 지구를 탈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알아챕니다. 이들 부자는 알고 보니 인간보다 더 따스한 정으로 뭉쳐진 운명 공동체였던 것이지요.

한편, 정부는 외계인으로 변해가는 비커스를 붙잡아 잔인한 생체실험을 하려 합니다. 변형된 비커스를 잘 연구해 이용하면 외계인들의 가공할 무기를 작동시킬 묘안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이지요. 절체절명의 위기.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비커스는 외계인 부자의 지구탈출계획을 도우며 목숨을 내겁니다.

[2] 생각 키우기

우연의 일치일까요? 외계인의 우주선이 불시착한 장소가 하필이면 요하네스버그라니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외계인이 출몰하는 ‘단골’ 장소는 미국, 그것도 뉴욕 맨해튼 아니었나요? 인류 최강국의 최대 도시를 다뤄야 굉장한 스케일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 정신을 집중해 보아요. ‘요하네스버그’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그래요. 바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예요.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이 시행했던 극단적인 인종격리정책이지요. 1966년 남아공의 백인지배계층은 수도인 케이프타운의 ‘6구역(디스트릭트 6)’을 백인전용 주거지로 공표한 뒤 그곳에 살던 흑인 원주민들을 격리시킨다면서 일거에 쫓아냈지요.

아! 알고 보니, 이 영화는 패러디 성격이 농후했군요. 영화의 제목이자, 외계인들이 머물러 살다 쫓겨나는 보금자리의 이름이기도 한 ‘디스트릭트 9’은 흑인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디스트릭트 6’를 비꼬고 풍자하는 것이었어요.

여기서 우리는 영화에 떼로 등장하는 외계인들이 말 그대로의 외계인이 아니라 뭔가 정치적 사회적 함의를 가진 존재임을 자연스럽게 짐작하게 되네요. 그래요. 디스트릭트 9에서 축출되는 외계인들은 바로 흑인 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게 박해받은 유대인들, 혹은 제한된 구역에 격리되어 사회의 골칫거리로 전락해 가는 난민들을 빗대어 표현한 대상, 즉 알레고리(allegory)였던 겁니다.

이 영화가 외계인을 한두 명도 아니고 수백만 명에 이르도록 설정해 놓은 것도 바로 이런 인종문제(혹은 차별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주도면밀한 처사였음을 이제야 알겠네요. 영화 속 외계인들이 하나하나 개성을 가진 인격체로 다뤄지지 않고 메뚜기 떼처럼 하찮고 몰개성적인 ‘무리’로 다뤄지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에요. ‘흑인을 비인격적으로 바라보는 백인의 편협한 시각’을 리얼하게 보여주기 위한 지혜로운 방식이었던 것이죠.

더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외계인과 인간을 바라보는 전도(顚倒)된 시각입니다. 외계인들은 당초 쓰레기나 벌레처럼 만고에 쓸데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들이야말로 사랑과 정을 가진 따스하고 감성적인 존재였어요. 그럼 인간은 어떤가요? 고귀하고 지적인 존재로 보이던 인간은 알고 보니 외계인의 끔찍한 외모보다 훨씬 더 끔찍한 내면을 지닌 악마적 존재임이 드러납니다.

외계인보다 더 외계적인 인간, 그리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외계인? 영화는 외계인의 외모로 변해갈수록 마음속으론 오히려 휴머니즘을 회복해가는 주인공 비커스의 모습을 통해 인류가 가진 모순성을 실감나게 보여주지요. 그리고 결국, 비커스는 인류의 모든 원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마치 예수 그리스도처럼 희생의 가치를 실현합니다.

[3] 이건 몰랐지?

이런 놀라운 영화를 만든 감독은 누구일까요? 아마도 세계적인 영화상을 받은 이름난 감독이겠지요? 아니에요. 놀랍게도, 이 영화를 연출한 사람은 닐 블롬캠프라고 하는 ‘초보’ 감독이에요. 블롬캠프는 원래 CF를 만들던 사람이었는데, ‘반지의 제왕’을 만든 피터 잭슨 감독이 그를 대번에 ‘낙점’했다고 해요. “외계인에 대해 이런 창의적인 시각을 가진 영화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잭슨 감독은 이 영화의 연출이 아닌 제작을 맡았어요.

한번 생각해 볼까요? 잭슨 감독이 만든 영화들과 ‘디스트릭트 9’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우선 한 가지가 떠올라요. 모두 기괴한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지요. 난쟁이 프로도(반지의 제왕), 집체만 한 고릴라(킹콩), 그리고 외계인(디스트릭트 9)…. 이들은 겉으론 우스꽝스럽거나 기괴한 형상이지만 속으론 뜨겁디뜨거운 가슴을 지녔다는,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네요.

그래요. 잭슨 감독이 관심을 가져온 화두는 바로 ‘인간의 탐욕’이었어요. 프로도와 킹콩과 외계인들은 모두 인간의 하릴없는 탐욕에 희생되는 안타까운 존재들이지요. 이처럼 위대한 영화는 인간 자신의 추한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영화랍니다.

▶지난 기사와 자세한 설명은 www.ezstudy.co.kr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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