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경비교도대원 고민 ‘깎아’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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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2일 03시 00분


미용업 86명 ‘美#사랑’, 영등포구치소서 무료봉사
대원들 “우리끼리 깎을땐 너무 짧아 수용자로 착각”

‘美#(미샵)사랑 봉사단’ 회원들이 20일 서울 구로구 영등포구치소 경비교도대를 찾아 대원들의 머리를 무료로 잘라주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 달에 두 번씩 구치소에서 미용 봉사를 벌여 온 이들은 더 체계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이달 13일 봉사단을 꾸렸다. 사진 제공 구로구
‘美#(미샵)사랑 봉사단’ 회원들이 20일 서울 구로구 영등포구치소 경비교도대를 찾아 대원들의 머리를 무료로 잘라주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 달에 두 번씩 구치소에서 미용 봉사를 벌여 온 이들은 더 체계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이달 13일 봉사단을 꾸렸다. 사진 제공 구로구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전동 트리머(일명 ‘바리캉’)가 지나가자 그새 자란 머리카락이 잘려 어깨 위로 떨어진다. 옆머리 등 유독 덥수룩한 부분은 가위로 섬세하게 손질한다. 프로 미용사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오간 지 10여 분. 한 병사의 까치집 같던 머리는 다시 밤톨 모양으로 돌아왔다.

20일 서울 구로구 영등포구치소 안 경비교도대. 사실상 금녀(禁女)의 공간인 이곳에 미용실 ‘원장님’들이 떴다. 한눈에 봐도 미용업계 종사자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한껏 꾸민 머리와 화려한 화장이 눈에 띄었다. 이들이 능숙하게 들어선 곳은 부대 안 좁은 미용실. 대형 거울과 의자 3개, 스프레이, 빗 등을 갖춘 미용실 문 밖으로는 이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군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전문 헤어디자이너인 이들은 ‘美#(미샵)사랑 봉사단’ 단원들이다. 구로구 내 미용실과 이·미용기 제조 판매업체 등 미용 관련 업계 종사자 86명이 모여 만든 자원봉사 모임으로 그동안 개인적으로 간간이 펼쳐오던 미용 봉사를 체계적으로 정비해 더 큰 규모로 이어 나가자는 취지로 13일 봉사단을 창단했다.

이들이 봉사단을 꾸린 결정적인 계기는 영등포구치소에서 걸려온 간곡한 전화 부탁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경비교도대원 53명은 모두 현역 군인이지만 다른 부대에 비해 외출할 일이 잦다. 구속 수감된 수용자들이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갈 때마다 동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종교단체 소속 자원봉사자가 머리를 잘라주거나 직접 부대에서 이발 담당 병사를 뽑았지만 아무래도 아마추어인지라 영 만족스럽지 못한 반응이었다. 아직 어린 마음에 젊은 군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수용자들과 동행하는 일부 병사는 머리 모양이 이상하면 행여나 자신도 수용자처럼 보이진 않을까 고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연을 전해들은 서용숙 대한미용사회 구로구지회장은 평소 함께 봉사활동을 하던 동료 미용사들과 한 달에 두 번씩 구치소를 찾기 시작했다. 다만 신세대 군인들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봉사자는 원장급으로만 특별히 ‘초빙’했다. 군인 머리 같은 반(半)삭발 머리는 긴 머리와 달리 오히려 잘못 건드리면 영구 혹은 버섯 모양 머리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

“처음에는 군인들도 거부감을 보였죠. 실력을 못 믿겠는지 ‘너무 짧게 치진 말아 달라’, ‘귀 뒤로 살이 안 보이게 해달라’ 등 주문도 많았고요. 물론 이제는 알아서 믿고 맡깁니다.”

봉사단 창단 이후 처음 방문하는 이날 원장님들은 구로구 자원봉사센터에서 새로 지급해 준 주황색 봉사자 활동복을 갖춰 입은 채 군인들의 머리를 한명 한명 정성껏 깎았다. 이들은 앞으로 구치소뿐 아니라 구로구 내 양로원과 병원, 치매센터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찾아가 미용 봉사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봉사단을 꾸렸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병원부터 지하철 역사까지 곳곳에서 섭외 부탁이 오고 있어요. 우리도 일주일에 한 번 쉬는 직장인이지만 바쁜 시간 쪼개서라도 미용 봉사는 계속할 겁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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