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허정도 前대표 “소통하니 풀리더군요”

  • 입력 2009년 8월 31일 06시 56분


마산 평암리 주민-진로소주 갈등해결 허정도 前 경남도민일보 대표
공장 증설 놓고 불신 팽팽
40일간 양측 오가며 쟁점 조율
기업-주민 아름다운 동행 이끌어

“감정싸움으로 가기 이전이라야 화해와 통합이 쉽습니다.”

최근 경남 마산시에서 벌어진 기업과 지역주민 사이의 문제를 해결한 허정도 전 경남도민일보 대표(56·창원대 초빙교수). 그는 30일 “중재자가 어느 한쪽의 위치에서 상대를 설득하려 들면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마산시 구산면 수정만매립지에서는 STX 조선기자재 공장을 입주시키려는 마산시와 이를 막으려는 주민의 마찰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 불신의 벽 허물고

허 전 대표는 지난달 15일 오후 한철수 마산상공회의소 회장의 ‘부탁’을 받았다. ㈜진로소주와 마산시 진전면 평암리 주민 사이에 생긴 갈등을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수출용 소주를 생산하는 진로소주 마산공장은 최신 설비를 도입하고 부족한 창고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공장 증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80가구 200명의 주민이 “취수량 증가로 지하수가 마른다”며 반대해 진척이 없었다.

한 회장은 “갈등이 첨예해 지역사회에 명망이 있는 허 전 대표에게 중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마산YMCA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던 허 전 대표는 “지역민의 화합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였으나 한 달 이상의 중재 과정은 외줄을 타는 기분이 들 정도로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무엇보다 양측은 믿음이 없었다. 진로소주는 그동안 공장 증설의 당위성만 강조했을 뿐 주민들이 지하수 고갈 문제를 얼마나 예민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적었다. 주민들 역시 회사가 자신들을 상대로 거짓 주장을 편다는 불신을 갖고 있었다.

그는 진로 관계자에게 “주민들이 보상금을 노리거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주민들에게는 “회사가 의도적으로 속이는 부분은 없고 주민과 상생하면서 기업을 키우려 한다”고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설득했다.

○ 상생의 길 찾다

그는 공직자의 개입을 차단하고 주민과 진로의 직접 접촉도 막았다. 그 대신 자신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도록 했다. 잘못된 말 한마디가 모든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 40여 일 동안 10차례 이상 양쪽을 오가며 의견을 조율하자 분위기가 달라졌고 쟁점들도 하나둘 풀렸다. 주민들은 200t을, 진로소주는 300t을 고수하며 합의 도출의 장애물이었던 1일 평균 취수량은 250t으로 정리했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1일 취수량 200t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협상 결렬을 선언하려 했으나 중재자의 진정성을 믿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22일 회의를 열어 △취수일지와 취수량 공개 △업종 전환 및 공장 추가 확장 금지 △교통대책 수립 등의 협약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25일에는 윤기노 진로소주 대표이사와 이영숙 주민대표가 ‘상생협약 체결식’을 열고 손을 잡았다. 가운데는 마산상의 한 회장이 섰고 허 전 대표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를 지켜봤다. 진로소주와 주민들은 다음 달 1일 저녁 마을회관에서 ‘상생화합잔치’를 열 계획이다. 기업과 주민이 ‘아름다운 동행’의 첫발을 내디디는 셈이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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