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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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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BS 여성앵커 케이트 쿠릭처럼 되고 싶어요.”
황나령 양(18·한국외국어대 부속외국어고 3·사진)은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학부 때는 정치나 사회과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선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할 계획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야무져 보였다.
황 양은 동아일보, (재)국제교류진흥회, 한국영어교육학회가 공동주최하고 YBM/Si-sa, YBM 시사닷컴, ETS의 후원으로 최근 열린 ‘2009년 전국 고등학생·대학생 영어 말하기 경시대회’에서 고등학생부 대상을 차지했다. 그가 이렇게 영어에 능통해진 데는 영어교육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지만, 좋아하는 영어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인 황 양 자신의 노력이 큰 몫을 했다.》
○ 초등학생 때: 외국인 친구를 만들다
황 양의 어머니는 ‘영어공부에서는 외국인을 자주 접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딸에게 미국 친구들을 만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황 양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엄마와 함께 서울 용산에 있는 서울미국인학교의 여러 가지 행사에 참석했다. 그곳 재학생들과 함께 하는 국내 투어에도 참석했다.
황 양은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사교적인 성격의 황 양은 자연스레 미국 친구들 사이에 섞여들었다. 함께 음식을 사먹고 놀러가는 일이 늘어났다. 나중에는 친해진 미국인 친구의 집에서 자고 오기도 했다.
미국의 또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골라 읽은 것도 미국 친구들을 사귀는 데 도움이 됐다. 황 양은 인기 시트콤 ‘풀 하우스’를 책으로 만든 것을 읽었다. 덕분에 또래 미국 여학생이 자주 쓰는 영어표현을 익혔고, 공통의 화젯거리가 있어 그들과의 거리감을 없앨 수 있었다.
황 양의 어머니는 딸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부터 매일 영어일기를 쓰고 검사를 받도록 했다. 처음에는 그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쭉 정리하는 일기였지만, 점차 그날 일어난 사건 중 하나를 잡아 상세히 묘사해나가면서 영어표현력이 풍부해졌다.
○ 중학생 때: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미국 학교에 유학하다
황 양은 영어공부를 위해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떠났다. 아칸소 주의 한 사립학교에 1년 반 동안 다녔다. 한국인 학생이라고는 황 양뿐이었다. 그러나 황 양은 인종 차별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곳 사람들이 순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황 양의 영어가 얼마나 능숙했던지, 미국 친구들은 황 양이 미국 내 다른 주에서 이사를 오는 바람에 지방 사투리를 쓰는 미국인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는 미국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렸다. 미국으로 유학 온 적잖은 한국 학생들이 주말이면 한국인 교회에 가서 한국 학생들끼리 모여 한국말로 열심히 떠들다가도 정작 미국인들 앞에선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황 양은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지방 악센트’를 고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미국 친구들과 가능한 한 대화를 많이 했고, TV 시트콤이나 드라마 속 영어대사를 열심히 따라했다. 시간이 지나자 악센트 문제가 점차 개선됐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 미국 친구들이 “너랑 전화할 때면 네가 아칸소 주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가”라고 말해줬을 때는 마음이 뿌듯했다고 한다.
○ 고등학생 때: 토론대회 참가로 세련된 영어표현을 익히다
한국외대 부속외고에 입학하고 나서는 영어를 생활화하려고 애썼다. 대형 서점에서 ‘US News & World Report’ 등 영어로 된 잡지를 종종 사봤다. NBC, CBS 등 미국 채널을 돌려보며 뉴스를 시청했다. 미국 문화를 접하기 위해 미국 음악방송 채널인 MTV도 자주 봤다.
황 양은 이렇게 보는 잡지와 TV 프로그램을 십분 활용했다. 잡지에 나온 좋은 문구, TV 뉴스 앵커들이 구사하는 세련된 표현,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즐겨 쓰는 생생한 신세대식 표현에 귀를 기울였고, 이를 늘 들고 다니는 스케줄러에 메모해두고 시시때때로 읽었다. 광고에 나온 카피 문구들도 적어뒀다.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생생한 현장 영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황 양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안 쓰는 말이나 미국적인 냄새를 풍기는 말을 주로 메모한다”고 했다. 영어표현의 뉘앙스를 중시하는 그는 “예쁜 말이나 생기 있는 말을 보면 메모해서 꼭 쓰고 싶어진다”며 웃었다. 이런 훈련을 반복하다 보니 영어 에세이 실력이 절로 늘었다. 억지로 번역해놓은 듯한 표현이나 한국어식으로 어색하게 옮긴 영어표현이 사라졌다.
황 양은 토론대회에도 종종 참가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학교에서 하는 토론 동아리에 참여하는 대신, 개인적으로 토론대회를 준비했다. 책이나 잡지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뉴스 채널을 시청하는 평소 노력으로도 충분했다. 지난해에는 영어토론 전문 코치를 만나 일주일에 한 번 토론 지도를 받기도 했다. 코치가 구해주는 세계 대회 비디오를 보며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토론기법을 익혔다.
수상실적과 경력도 점점 쌓여갔다. 지난해에는 고려대, 올해는 연세대에서 열린 영어토론대회에서 각각 우승했다. 아리랑 TV, EBS 등의 토론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날도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 컨벤션홀에서 열리는 ‘모의 OECD 회의’의 의장으로 참여하기 위해 바쁘게 회의장을 오가고 있었다.
황 양의 꿈은 미국 방송국의 ‘간판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을 넘어 넓은 세계에서 우뚝 서고 싶다”고 밝히는 그의 모습이 당당해보였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