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세이]야생동물의 천국, 장항습지

  • 입력 2009년 6월 17일 03시 00분


지난달 학생들과 함께 습지생태계를 직접 관찰하기 위해 한강 하류 김포대교와 일산대교 사이에 위치한 장항습지를 다녀왔다. 습지 입구를 지나 조금 가다 보니 고라니가 먼발치에서 물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강에서 고라니를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환경부는 2006년 4월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하는 장항습지를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우리나라 최대의 버드나무 군락을 자랑하는 장항습지는 겨울 철새가 새까맣게 내려앉아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이곳은 새의 서식 환경이 좋아 40여 종의 철새 2만여 마리가 겨울을 난다. 멸종위기야생동물인 흑두루미, 재두루미, 가창오리, 저어새, 큰고니, 솔개뿐 아니라 삵, 맹꽁이, 붉은발말똥게도 살고 있다. 멸종위기야생동물의 천국이 됐다. 말똥게와 버드나무는 공생관계로 서로 도와가며 살고 있다. 습지에는 버드나무 잎을 분해할 미생물이 많지 않은데 말똥게는 버드나무 잎을 먹고, 유기물질을 배설한다. 버드나무의 뿌리는 그 유기물질을 흡수하고, 말똥게가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숨을 쉰다.

장항습지가 야생동물의 천국이 된 것은 두 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장항습지는 우리나라 4대 강 중 유일하게 강 하구가 둑으로 막혀 있지 않아 강물과 바닷물이 교류하는 한강 하구의 ‘기수역(汽水域·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을 끼고 있는 생태계다. 기수역 생태계는 소금의 농도가 다양해서 여러 가지 어류와 생물들이 살고 이를 먹이로 하는 새들과 야생동물들이 모여들게 된다. 둘째, 수십 년간 안보상의 이유로 사람의 접근을 통제해서 야생동물이 사람 없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장항습지의 고라니를 보면 인근에 아파트가 즐비하고 자동차도로가 옆으로 지나가는 곳이라도 사람만 접근을 하지 않으면 야생동물의 천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경인운하가 착공된 뒤 신곡수중보를 하류로 이전하게 될 가능성을 근거로 수중보가 이전되면 장항습지의 60%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게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만일 습지가 사라지면 내가 만난 장항습지의 고라니는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환경부가 신곡수중보 이전에 따른 한강하구습지보호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검토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양병이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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