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2명중1명은 친아버지가…가정의달 ‘불편한 진실’

  • 입력 2009년 5월 1일 17시 59분


김가희 양(가명· 만12세)은 아빠가 무섭다. 아빠는 술만 취하면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라며 손찌검을 한다. 매일 두려움에 떨다보니 학과 공부도 따라가기 힘들뿐더러 스스로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12월, 엄마가 일하러 간 사이 술에 취한 아빠는 4시간 동안 욕을 하며 주먹을 휘둘렀고 결국 김 양은 기절했다. 이웃의 신고로 아동보호기관을 찾은 김 양은 정신지체 판정과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너무 귀하게 자란 아이들이 문제가 되는 '한 자녀 시대'이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학대에 시달리며 불우한 성장기를 보내는 아이들도 있다. 보건복지부가 1일 발표한 '2008년 아동학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3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상담건수 중 아동학대 의심건수는 7218건으로 조사를 시작한 2001년보다 2.3배나 늘었다.

● 아동학대행위자의 전형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40대 남성 학부모'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 친인척 타인 등에 의한 전체 아동학대사례 중 84.5%가 부모 (친부모, 의붓 부모, 입양부모)에 의한 학대로 나타났다. 특히 친부에 의한 학대가 전체의 51.2%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아동학대가 발생한 가정의 유형을 살펴보아도 부자가정이 1687건(30.2%)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는 일반가정이 1515건(27.2%), 모자가정 999건(17.9%)순이었다. 피해아동은 만 7~12세 초등학생 연령 어린이가 약 50% 정도이고, 학대행위자의 연령은 30~40대가 67.9%로 가장 많다. 이에 따라 아동학대행위자의 전형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40대 남성 학부모'로 볼 수 있다.

아동학대는 경제적 어려움이 클수록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학대행위자의 직업은 전체의 41.6%가 무직, 단순노무직, 비정규직 등으로 소득수준이 낮고 불안정하다. 또한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도 28.7%나 되어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3%)의 9배가 넘는 수치다.

아동학대행위자의 특성을 조사해보면 양육태도 및 방법 부족(30.2%)이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사회경제적 스트레스 및 고립(24.6%), 중독 및 질환문제(12.7%)로 나타났다. 즉 원래부터 기질이 폭력적이어서 아이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이 더 큰 것으로 풀이된다.

● 왜 아동학대 주범이 아버지인가?

'아동 학대'는 단순히 신체적, 정서적 폭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발달을 저해하고 전 생애에 걸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심각한 범죄다. 그런데 왜 똑같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양육이 힘들더라도 모자가정보다 부자가정에서,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자주 아이를 학대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폭력적 문제 해결 방식에 익숙하다는 성별적인 특징과 함께 모자가정에 비해 부자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하고 지원이 부족한 현실을 지적한다.

노충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버지는 신체적인 학대, 어머니는 정서적인 학대 행위가 많다"면서 "이는 남성이 '때려야 교육이 된다'는 폭력적인 양육 방법을 선호하며 자녀와의 감정적인 교류에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대행위자의 특성 중 '양육태도 및 방법부족'이 전체 29.5%로 1위를 차지하는 것과도 맥락이 일치하는 분석이다.

부자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하고 제도적 지원이 부족한 탓도 있다. 통계청의 '2008년 인구총주택 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 부모 가구비율은 약 8.7%에 불과하지만 아동학대 사례의 약 50%가 한 부모 가구에서 일어나고 있다.

배화옥 경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자가정의 숫자가 적다보니 아예 정책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았다"며 "가정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적극 개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미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미숙 실장도 "모자가정과 달리 부자가정은 소득이 있어도 가사 해결이나 아동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금전적인 지원보다도 가사도우미지원이나 베이비시터 지원 등 정상적인 생활이 유지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