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자살한 탤런트 장자연 씨가 지난달 말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에서 술자리 접대와 성 상납 요구, 기획사 사장의 폭행을 언급하면서 접대를 받은 방송사 PD 등 여러 명의 실명을 적시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 문건에 나온 실명들은 통틀어 ‘장자연 리스트’로 불리고 있으며 장 씨가 적시한 사안들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연예계의 검은 비리를 둘러싼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방송 연예계에서는 “누구누구가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검은 비리 드러나나=장 씨는 이 문건에서 날짜 이름 직위를 거론하며 “김 사장의 강요로 얼마나 술 접대를 했는지 셀 수 없다” “어느 감독이 골프 치러 올 때 술과 골프 접대를 요구받았다”고 기록했다.
이 문건에서는 술자리 접대 등과 관련해 방송사 PD를 비롯해 광고계 및 재계 인사들의 실명이 언급된 것으로 밝혀졌다.
방송 연예계에서는 “문건의 비리 내용은 실제일 수 있다” “성 상납 같은 것은 사라진 지 오래”라는 말이 엇갈리고 있다.
실명이 거론된 한 방송계 인사는 “한 번 만난 적도 없는데 왜 내 이름이 나오는지 어이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니저, 방송사에 약자일 수밖에 없는 신인 또는 무명 여배우가 캐스팅이나 CF 섭외를 빌미로 한 술자리 접대를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게 연예계의 분석이다.
▽왜 문건을 작성했나=문건은 H기획사 대표 유모 씨가 8일 미니 홈페이지에 “자살하기 1주일 전에 장 씨로부터 6장의 문건을 받았다”는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유 씨는 8일 올린 글에서 “(자살) 2주 전부터 자연이가 털어놓은 이야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해결점을 찾을 방법을 서로 얘기하다 6장의 자필로 쓴 종이를 (장 씨가) 주었다”고 밝혔다. 9일 올린 글에서는 “글을 올리는 이 순간이 자연이가 자살하기 1시간 전에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라며 “자연이는 단 한 명의 공공의 적과 싸울 상대로 저를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글로 볼 때 장 씨가 누군가로부터 큰 고통을 받았고, 관련 비리를 문서로 기록해 유 씨에게 넘겨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공개된 문건이 ‘배우 장자연의 종합 피해 내용입니다’로 시작해 끝 부분에 주민등록번호를 적고 손도장을 찍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법정 다툼이나 비리 폭로 등 특정 용도를 예상하고 쓴 일종의 진술서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불탄 문건과 온전한 문건=KBS는 13일 ‘뉴스 9’에서 불타고 남은 문건 조각의 내용을 보도한 뒤 다음 날에는 온전한 형태의 3장짜리 문건을 다시 전했다. KBS는 13일 ‘뉴스 9’에서 불탄 문건 조각 중 확인된 내용이라며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다’ ‘방 안에 가둬놓고 손과 페트병으로 머리를 수없이 때리면서…’ 등의 내용을 내보냈다. KBS는 14일 뉴스에서는 온전한 문건 영상과 함께 비슷한 내용을 전했다.
KBS의 첫 보도에 대해선 불에 타지 않고 남은 조각에만 유독 성상납 요구 등 문제가 되는 대목이 들어 있다는 점이 의혹을 불러 왔다. 이후 다음 날 온전한 문건이 보도되자, 문건을 지닌 사람이 사태의 추이를 조정해 가며 내용을 흘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KBS 관계자는 “불에 탄 문건을 먼저 구한 뒤 온전한 것을 같은 날 구했으며 보도 시점에 차이를 뒀을 뿐”이라고 밝혔다.
유 씨는 13일 경찰 조사에서 “장 씨에게 받은 문건은 유족에게 넘겼다”고 진술해 해당 문건의 복사본이 여러 개 나돌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기획사 대표 간 갈등=문건을 둘러싼 진실 공방의 이면에는 장 씨의 소속사 전 대표인 김모 씨와 그 밑에서 일하다 여배우 2명을 데리고 나와 별도 회사를 차린 유 씨의 갈등이 있다. 유 씨가 미니 홈피에 올린 글에서 ‘단 한 명의 공공의 적’이라고 언급한 이도 김 씨가 유력하다. 김 씨는 계약 파기 등을 이유로 유 씨에게 4건의 소송을 걸어둔 상태다. 일본에 있는 김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건은 조작된 것이고 (소송을 당한) 유 씨가 장 씨를 설득해 없는 내용을 지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장 씨는 이 문건에서 현 소속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그가 일주일 뒤 자살한 것은 그 사이에 일이 틀어지면서 감당하기 힘든 심리적 압박을 받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