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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3월 16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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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정보화 시대에 18세기 조선 실학은 관심의 대상이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경험했던 사회적 양상이 오늘날 사회·지식 패턴의 변화와 그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그 흐름의 중심에 다산 정약용이 있다. 그는 18년이라는 유배 생활 동안 500여 권의 책을 남겼다. 척박한 유배 환경에서의 많은 저술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다산은 이 엄청난 저술 작업을 어떻게 진행했을까. 책은 정약용이 행한 저술 작업의 진행 절차, 편집과 정리까지 전 과정을 추적한다. 이것을 논술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자.
「(가) 다루어야 할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 여기에 휘둘려서 허둥지둥하기 마련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언제나 생각이 명징하고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눈앞에 펼쳐진 어지러운 자료를 하나로 묶어 종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비슷한 것끼리 갈래로 묶고 교통정리를 하고 나면 정보간의 우열이 드러난다. 그래서 요긴한 것을 가려내고 긴요하지 않은 것을 추려내는데 이 과정이 바로 ‘종핵(綜핵)’이다. 그 다음은 남은 알맹이에 날개를 달아주는 과정이다. 무슨 말인지 모를 것들은 마고 할미의 긴 손톱으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듯 명쾌하게 설명을 보태고, 어지러워 혼동하기 쉬운 것들은 흐트러진 머리칼을 참빗으로 빗듯 깔끔하게 교통 정리한다. 이것이 바로 ‘파즐(爬櫛)’이다. -종핵파즐법(綜핵爬櫛法)(69, 70쪽)
(나) 형님의 서당을 위한 기문(記文)를 쓰면서 다산은 뜬금없이 누에치는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다. 여기에 이어지는 글은 대뜸 ‘세계는 모두 잠박이다’로 시작된다. 다산이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다. “흑산도는 뭍과는 동떨어진 작은 섬이다. 잠박으로 치면 9등분한 잠실의 한 칸을 차지하기도 힘든 조그만 잠박이다. 형님은 조그만 잠박에다 누에를 친다. 지나는 사람들은 이를 보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여기서 무얼 가르치겠느냐고 비웃겠지만, 훌륭한 스승이 단계에 따라 훈도하고 자양 있는 말씀으로 이끌면 이들 또한 서울의 훌륭한 스승 밑에서 자란 학생들 못지않은 쓸모 있는 인재가 될 것이다.” -일반지도법(一反至道法)(363, 364쪽)」
어지러운 정보 옥석 가리고 빗질하듯 교통정리
다산의 ‘종핵파즐법’ 왜 오늘날 더더욱 절실할까
① ‘(가)의 종핵파즐법의 효과를 밝히고, 이것으로 오늘날 학문추구의 방법을 비판하시오’를 만들어 보자.
종핵파즐(綜핵爬櫛)은 ‘복잡한 것을 종합해 하나하나 살피고, 깔끔하게 정리해낸 것’을 말한다. 그 효과로 복잡한 내용이 비로소 일목요연해지고 단순명료해진다. 오늘날 인터넷, 도서관에 많은 정보가 복잡하게 유통되고 존재한다. 쏟아지는 정보를 꼼꼼하고 면밀하게 따져서 쭉정이는 솎아내고 알맹이만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학문의 결과인 저서들은 말은 현란한데 무슨 말인지 어려워 알아들을 수가 없다. 진정한 학문이 추구하는 목표는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즉 어려운 것을 쉽게 풀이하는 절차인 셈이다. 오늘날 학문도 이를 추구해야 한다. 종핵파즐법이 필요한 이유다.
② ‘(나)의 일반지도법의 효과를 제시하고, 창의적인 글쓰기와 관련지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시오’를 만들어 보자.
일반지도(一反至道)는 ‘한 차례 생각을 돌이켜 깨달음에 이른다’는 말이다. 같은 일상 속에서 고정적인 관점은 새로운 성취를 이룰 수 없다. 평범한 것에서 비범한 것을 끄집어내고, 역경과 시련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야 한다. 일반지도법이 필요한 이유다.
일반지도법은 창의적인 글쓰기와도 관련된다. 성동격서(聲東擊西)격으로, 앞에서 엉뚱한 말을 늘어놓아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켜놓고 느닷없이 본질로 들어가는 수법이다. 내용의 첫 글에 일반지도법을 적용하면 상식적인 생각을 뒤집어서 참신한 주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 글이 독자에게 강렬한 호소력을 갖게 한다.
다산 정약용은 통합적 인문학자다. 서로 다른 내용을 섞고 나누어서 새로운 내용의 가치를 창조한다. 그의 창의적인 지식경영법은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이 책에서는 여박총피법(如剝蔥皮法) 외 정약용의 49가지 지식경영법이 등장한다. 이 책의 필자는 정약용의 작업 과정을 보면서, 그의 사고가 현대적, 과학적, 논리적이라는 점에 크게 놀랐다고 말한다. 저술 작업에 몰두하느라 방바닥과 닿았던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도희 송탄여고 국어교사 ‘스스로 논술학습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