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돈으로 730억대 불법 사채업

  • 입력 2008년 10월 14일 03시 00분


1000여개 中企 대상… 연이율 580% 폭리 요구

역대 최대 규모… 도주한 日人 전주 출금 조치

지난해 12월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이모(56) 씨에게 무담보 신용대출을 해 준다는 e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부도 위기에 처할 정도로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이 씨는 앞뒤 생각할 겨를 없이 그곳에서 4500만 원을 빌려 썼다. 그러나 1000만 원을 약속된 시간 안에 갚지 못했다.

사채업자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 이들은 최대 연 49%의 법정이자율을 훌쩍 넘는 이자를 이 씨에게 요구했고 이 씨가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자 회사까지 찾아와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어디에 묻히고 싶냐”며 집단으로 행패를 부렸다. 결국 이들은 이 씨로부터 거의 빼앗다시피 돈을 받아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일본인 관리자의 자금을 바탕으로 730억 원대 규모의 불법 사채업을 한 혐의(대부업법 위반 등)로 대부업체 사장 권모(34) 씨를 구속하고 2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일본인 관리자 I(39) 씨 등 9명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권 씨 등은 2003년부터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사채사무실 3개를 차려 놓고 1000여 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1500회 이상 불법 사채업을 한 혐의다.

권 씨 등은 인터넷으로 중소기업체를 무작위로 선정해 팩스, 전화, e메일로 ‘무담보 신용대출’을 해준다고 유혹한 뒤 돈을 빌린 중소기업들에 연 580%에 이르는 이자를 요구했다. 돈을 빌려간 업체가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이들은 회사 사무실을 점거한 뒤 폭력을 휘둘렀다.

3개의 사채사무소는 정보를 공유하며 돌려서 돈을 빌려주는 수법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던 중소기업들을 궁지에 몰았다. 3개의 사무소는 서로 다른 업체인 것처럼 철저하게 위장했고 검거를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로 개설한 휴대전화도 30개나 사용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적발된 불법대출 관련 사건 중 최대 규모”라며 “공범이 있는지와 자금 성격 등을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검거된 한국인 직원들이 ‘자금을 댄 일본인 관리자들이 일본 조직폭력배에 속해 있다’고 진술함에 따라 도피한 일본인들을 출국 금지시키는 등 소재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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