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油亂 넘자” 임단협 무분규 타결 붐

  • 입력 2008년 6월 3일 02시 55분


勞 자진 임금동결-협상 사측 위임 잇달아

“회사 잘돼야 조합원도 이익” 공감대 확산

“노사(勞使) 상생과 화합, 미래지향적인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올해 임금 협상 및 단체협상을 어떤 조건도 없이 회사 측에 위임합니다.”

LS산전 장항공장 노조와 사측이 올해 임단협을 위해 지난달 27일 경기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LS타워에서 처음 만난 자리에서 김병석 노조위원장이 이렇게 말하자 사측 대표들이 깜짝 놀랐다.

장항공장 노조가 사측에 임단협을 위임한 것은 노조 창립 53년 만에 처음이기 때문이다. 구자균 LS산전 사장은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김 노조위원장은 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회사의 채산성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회사가 잘돼야 조합원들도 이익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1980년대 노조와 2000년대 노조가 같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 줄 잇는 임단협 무분규 타결

민주노총이 6월 말∼7월 초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노동계 상층부의 기류는 심상치 않다. 그러나 일선 산업현장에서는 임금을 동결하거나 임단협을 무분규로 타결하는 노사가 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GS칼텍스 금호석유화학 대우조선해양건설 동국제강그룹 포스렉 포철산기 고려제강 아모레퍼시픽 휴켐스 평화정공 진흥기업 등은 올해 임금에 관한 모든 사항을 사측에 위임했다. 또 LG전자 하이닉스반도체 대한항공 코오롱 등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올해 임금을 동결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21년, LG전자는 19년, 아모레퍼시픽은 17년, E1은 13년, 노루페인트는 10년 연속 무분규 타결을 이어갔다. 남해화학에서 분할된 휴켐스는 1974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무분규로 타결했다.

공공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서울 시내버스에 이어 대구 시내버스 노사가 올해 임단협 무분규 타결에 합의했다.

○ 상당수 노조가 달라지고 있다

강성 노조가 있는 일부 기업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노사 문제를 둘러싼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종전과 달라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노사분규 건수는 2002년 322건에서 2004년 462건으로 늘었다가 2005년 287건, 2006년 253건, 지난해 212건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근로손실일수(파업일수×파업참여 근로자 수)도 2002년 158만404일에서 지난해 63만685일로 감소했다.

특히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급등, 세계경제 침체 등으로 기업 환경이 나빠지고 있는 가운데 기업의 생존을 먼저 생각하는 노조가 속속 나타나고 있어 경영계가 고무돼 있다.

2004년 64일간 파업을 벌였던 코오롱 구미공장은 올해 임금을 자진해서 동결했다. 송필섭 노조 교육선전부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회사가 어려워서 임금을 올려 달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참은 김에 몇 년 더 참아보자고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임금 동결안 투표에 98.8%가 참여해 97.5%가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최근 “한때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어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한 구미공장이 (나를) 가장 감동시켰다”고 밝혔다.

E1의 이승현 노조위원장은 “직장을 다니는 이유는 임금과 복지와 고용안정”이라며 “싸움을 해서 얻어내는 방식은 옛날 방식으로 지금은 그런 시대가 끝났다”고 말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은 “개별사업장의 노사협력 분위기는 글로벌 경쟁 속에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한국만 아직까지 상급단체가 정치적인 이유로 일선 노조의 다리를 잡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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