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보고 ‘퍽치기’ 수법 배운 중학생 모방범죄

  • 입력 2008년 4월 7일 22시 39분


TV 공개수배 프로그램에서 '퍽치기' 수법을 본 뒤 부녀자들을 상대로 똑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중학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대낮 주택가에서 홀로 걸어가는 부녀자들을 둔기로 때린 뒤 금품을 빼앗은 혐의(강도상해)로 이모(14) 군에 대해 7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군은 지난달 6일 오후 1시 50분 경 서울 서초구 양재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최모(40·여) 씨의 뒤를 따라가 준비한 벽돌로 머리를 때린 뒤 현금 23만 원과 손가방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군은 또 지난달 17일에도 첫 번째 범행을 저지른 장소 부근에서 똑같은 수법으로 김모(39·여) 씨를 둔기로 때린 뒤 현금 30만 원이 든 가방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군은 경찰에서 "혼자 걸어가는 여자의 뒤를 따라가 머리를 때리고 돈을 뺏는 수법이 몇 번 TV에 나와 그걸 보고 (범행 수법을) 배웠다"며 "TV에서 본 대로 하니 정말 어렵지 않게 돈을 뺏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중학생인 이 군이 흉기는 구하기도 어려운데다 사용하기도 어려워 다른 범행 수법을 고민하던 중 TV 프로그램을 보고 '퍽치기' 수법이 제일 쉽겠다고 생각한 것"이라며 "이 군은 올해 초부터 TV에서 방영되는 공개 수배프로그램을 열심히 봤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이 군은 현금만 빼낸 채 가방을 버리고, 위치추적을 피하기 위해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버리는 등 방송 프로그램에 본 범행 수법을 그대로 따라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인적이 드문 시간과 장소를 고르고, 담을 넘어 도망갈 수 있는 도주로까지 모두 면밀히 고려해 범행을 저지른 수법이 도저히 14살 중학생의 짓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군도 경찰에서 "돈을 구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우연히 TV에서 범행을 재연하는 프로그램을 봤다"며 "그걸 보면 돈을 뺏을 수 있는 다양한 범죄 수법도 나오고 범행 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법, 도망치는 법 등이 나와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집에 살고 있는 이 군은 "할머니가 한달에 1만 원 정도 용돈을 줬지만 친구들과 놀다 보면 1주일도 못가 돈이 다 떨어졌다"며 "친구들과 PC방에 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한편 이 군이 "범행 수법을 배웠다"고 진술한 프로그램은 KBS 2TV '특명 공개수배'로 2007년 5월 첫 방송을 시작해 42회를 끝으로 지난달 27일 막을 내렸다.

이 프로그램이 공개한 용의자 중 27명이 검거됐고 11명이 자수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가족 시간대에 시청하기 부적절하고 모방범죄의 우려가 있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이 계속되자 KBS는 이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그러나 지금도 케이블 TV에서는 범죄 재연 프로그램이나 수사물이 계속 방송되고 있어 모방 범죄의 우려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최응렬 교수는 "범죄 재연 프로그램이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겠지만 이번 사건처럼 범죄를 학습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며 "방송국에서 시청률을 이유로 범죄 수법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고 자세하게 재연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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