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에 ‘네이버 지식IN’ 넣은 리포트도”

  • 입력 2008년 3월 8일 02시 52분


서울대 표절방지 강좌 ‘진리탐구와 학문윤리’ 첫 수업 가보니…

■ 학부생 대상 국내 첫 강좌

7일 오전 10시 ‘진리탐구와 학문윤리’의 첫 수업이 열린 서울대 관악캠퍼스 83동 404호 강의실.

강단에 선 영문학과 김명환 교수가 입을 뗐다.

“요즘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면 무조건 ‘네이버’에 들어가 찾고 있습니다. 심지어 리포트나 논문 각주에 ‘네이버 지식IN’을 넣는 학생도 많아요.”

강의실을 가득 채운 100명의 수강생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김 교수의 얼굴은 오히려 굳어졌다.

“이것도 엄연한 표절이지만 표절에 대해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학생들은 왜 표절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이 수업이 개설된 이유”라는 김 교수의 말에 학생들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곧바로 김 교수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 학생이 예전에 제출했던 리포트를 다른 강의에서 다시 제출할 경우 부정행위일까요, 아닐까요? 부정행위? 자신이 직접 쓴 리포트인데도?”

긴장한 표정으로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며 김 교수는 “정답은 부정행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며 “외국 대학에는 ‘자기표절’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서울대에는 그에 대한 조사 절차나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첫 수업을 한 ‘진리탐구와 학문윤리’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학부생을 대상으로 표절 방지를 가르치는 강좌로 황우석 사태로 홍역을 치른 서울대가 지난해 2월부터 개설을 추진해 왔다.

본보 2007년 4월 6일자 참조 ▶ 대학에 표절방지 강좌 첫 개설

1주일에 3시간씩 진행되며 법대 조국 교수, 수의대 우희종 교수, 미대 김정희 교수, 인문대 한정숙 교수 등 각 단과대를 대표하는 교수들이 돌아가며 강의를 할 계획이다.

강의 개설의 산파역을 맡은 생명과학부 이현숙 교수는 “학문을 시작하는 학부생에게 기본적인 연구윤리와 시민으로서의 양심을 심어 주자는 취지에서 수업을 시작했다”며 “연구 윤리 위반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 모의재판 등 토론식 강의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의 리포트도 국제적인 표절 기준에 맞춰 교수들이 문제가 있는 부분을 직접 첨삭한 뒤 학생들에게 돌려줄 예정이다.

서울대 측은 “수강생을 80명으로 제한했지만 추가 수강신청 문의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며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열기에 학교도 놀랐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수강생은 인문대, 사회대, 상경대 등 거의 모든 단과대 출신들로 구성됐으며 학년도 1학년에서 4학년까지 다양하다.

수강생 박문경(20·여·외교학과) 씨는 “학문 윤리가 계속 강조되지만 학생들은 학문 윤리를 지키고 싶어도 몰라서 못 지키는 경우가 많다”며 “수업을 통해 학문 윤리가 무엇인지, 표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 교수는 “학부생을 위한 제대로 된 윤리 교육 교재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 강의가 서울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학문 윤리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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