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대 부산국세청장 “돈 건넨 것 가슴에 묻고가라고 말해”

  • 입력 2007년 11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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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에게 ‘뇌물 상납 진술’을 번복하도록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병대 부산지방국세청장이 31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정 전 청장에게 진술 번복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에게 ‘뇌물 상납 진술’을 번복하도록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병대 부산지방국세청장이 31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정 전 청장에게 진술 번복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 이병대 부산국세청장 회견

‘불을 끄려다 오히려 더 키웠다.’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에게 ‘상납 진술’ 번복을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병대 부산지방국세청장이 31일 기자회견을 마친 뒤 검찰과 국세청 안팎에서 흘러나온 반응이었다.

▽강한 부인?=이 청장은 일단 정 전 청장에게 진술 번복을 종용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 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8월 9일 정 전 청장이 구속된 뒤) 열흘쯤 지나서 전군표 국세청장과 업무 보고를 위해 통화할 때 전 국세청장이 ‘(정 전 청장은) 부산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사람인데 어떻게 면회도 안 가느냐’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며칠 뒤 검찰에 공식 요청해 검찰청사 내 수사실에서 정 전 청장과 만났다”며 “(그 자리에서 정 전 청장에게) 지금 혹시 (뇌물 용처에 대해) 말하면 국가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정치권에 준 게 있으면 말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나. 남자로서 가슴에 묻고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직 국세청장이 돈 관련 진술을 하는 것을 보니 안 좋더라. 사람들도 (진술한 사람을) 기피하더라. 전직 국세청장에게 돈 준 것을 재판에서 말한 간부가 있었는데 나와서 보니까 좋지 않더라. 사람들도 기피하는데 그럴 필요 있겠나. 혼자 안고 가는 게 나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청장은 “정 전 청장에게 ‘안고 가라’고 말한 것은 전 국세청장을 의식한 발언이 아니고 정치권이라든지 제3의 인물을 의식한 것이었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또 “모 신문에서 9월에 구치소에 갔다고 보도한 것은 또 특별면회를 가 봤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거절당해서 못 간 것을 간 걸로 착각한 거 같다”고 밝혔다.

▽세무조사 무마 로비 알았나=이 청장은 김상진 씨가 지난해 8월 26일 세무조사 무마 대가 1억 원을 정 전 청장에게 건네는 식사 자리에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이 동석했다는 사실에 대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부산)에서 사건이 났기 때문에 정 전 청장이 어떤 사건이었다는 것을 나한테 다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이 시기는 본보가 올해 8월 28일 정 전 비서관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연루 의혹을 최초로 보도하기 전이다. 전 국세청장도 이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청장은 이어 “검찰도 (정 전 청장의 뇌물을 상납받은 사람이) 전 국세청장이 아니었겠냐는 추측은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제 머릿속에는 (돈 건네진 곳이) 정치권 또는 정 전 비서관보다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겠냐는 생각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전 국세청장과 정 전 비서관이 친하고 각별한 사이인 걸로 개인적으로 추측하고 있다”며 “(전 국세청장에게서) 정 전 비서관은 피했으면(진술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또 “검찰에 갔을 때 ‘청장님께서 정 전 비서관에 대해서 대단히 걱정을 하시더라’고 얘기를 했는데 검찰에서도 그 사람이 국세청장이 아니었겠냐는 추측은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국가적으로 대통령비서관이라는 분(정 전 비서관)이 그런 자리에 같이 있었다든가 뇌물하고 관련됐다는 것이 얼마나 큰 치명타인지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국세청장이 외유를 나갈 때마다 거마비를 주는 관행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관행은 모르겠다. 국세청장이 나가고 할 때 나는 돈을 준 적이 없다”면서 “돈 있는 사람은 줄 수도 있겠죠”라고 답했다. “그런 관행이 없단 말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지자 “개인적인 문제로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답변을 피했다.

한편 현직 국세청장이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되는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31일 국세청 직원들은 이번 사건이 몰고 올 파장을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전 국세청장은 소환 전날인 이날까지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등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납설이 사실로 확인되면 국세청의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은 물론 고위층 인사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이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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