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7년 10월 31일 02시 5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청와대에서 근무한 지 약 두 달 만에 신정아 씨가 변 전 실장의 청와대 집무실을 방문해 그림을 직접 설치해 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신 씨는 변 전 실장의 권세를 등에 업고, 변 전 실장은 신 씨의 출세를 돕는 등 역할분담을 하면서 각종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두 사람이 얼마나 각별했는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신 씨가 청와대에 작품 설치=신 씨는 변 전 실장이 대통령정책실장으로 임명된 2006년 7월 이후 2차례 청와대를 방문했다.
첫 번째인 2006년 8월에는 평소 알고 지내던 정모 행정관의 안내로 청와대를 구경했다.
같은 해 9월 신 씨는 변 전 실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신 씨는 변 전 실장의 청와대 집무실에 영국 작가인 존 버닝햄의 원본 작품을 설치했다.
신 씨가 학예실장으로 재직했던 성곡미술관의 존 버닝햄 전시회 이후 신 씨가 작품 한 점을 변 전 실장에게 선물로 건넨 것이다.
신 씨는 버닝햄 작품 외에 다른 유명 작가의 작품 복사본 3, 4점도 변 전 실장에게 선물했다. 변 전 실장은 이를 모두 청와대 집무실에 설치했다. 신 씨가 제공한 작품 4, 5점이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변 전 실장의 집무실을 채운 셈이다.
▽“예술을 모독한 ‘예술적 동지’”=변 전 실장은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신 씨를 통해 미술품 4점을 구입해 기획예산처에 전시하도록 했다.
당시 신 씨는 예산처에 해당 작품을 납품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그 가운데 4점 1세트인 ‘움직이는 고요’ 중 1점을 자신의 오피스텔에 몰래 설치했다.
4개의 화면에 2개씩 담긴 농구공이 관람자들이 걸어 갈 때마다 아래위로 움직여 공이 튀는 듯한 느낌과 속도감을 느끼게 한 것인데 1개를 빼면 작품의 완성도와 가치가 크게 훼손된다고 한다.
‘움직이는 고요’의 작가인 윤영석 씨는 검찰에서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지 못하게 되어 상당한 가치 하락을 초래하게 됐다”고 신 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도 “이는 ‘예술 모독’으로서 신 씨와 변 전 실장이 ‘예술적 동지 관계’라는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변 전 실장은 신 씨의 출세 도우미”=검찰은 “신 씨가 변 전 실장의 권세를 등에 업고 후원금 등을 모금했으며 변 전 실장은 신 씨를 출세시켜 주고 신 씨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일례로 변 전 실장은 2005년 홍기삼 당시 동국대 총장을 만나 “신 씨를 교수로 채용하면 재정적으로 학교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또한 신 씨의 허위 학력이 문제가 돼 신 씨가 사표를 제출하자 변 전 실장은 홍 총장에게 협박성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동국대는 신 씨의 사표를 반려하고 휴직 처리했다가 소속을 교양교육원 교수로 변경해 복직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올해 6월경 변 전 실장은 신 씨의 예일대 박사 학위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도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선임되게 해 달라고 한갑수 이사장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검찰은 “허위 학력으로 한국 최대의 문화예술제이자 국제적 행사인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선정된 사실이 알려져 문화예술 애호가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고 국가 위신까지 손상했다”고 밝혔다.
▽신 씨 도피 배후 규명 등에는 실패=검찰은 신 씨가 7월 미국으로 도피한 전후로 변 전 실장과 여러 차례 통화를 한 사실을 파악했다.
그러나 변 전 실장이 신 씨의 도피를 방조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았다. 변 전 실장과 신 씨 모두 “일상적인 대화였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 또 신 씨의 미국 내 계좌에도 제3자가 도피자금을 입금한 흔적 등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신 씨의 재정적인 후원자는 검찰 수사결과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은 신 씨가 성곡미술관의 기업체 후원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2억1600만 원을 횡령해 호화판 생활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신 씨는 개인회생절차를 밟고 있었는데도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명품 의류를 입고 특급호텔을 수시로 이용해 그동안 누군가가 신 씨를 후원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에 시달렸다.
이 밖에 올해 2월 스페인에서 개최된 아르코 아트페어 행사의 큐레이터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변 전 실장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한국화랑협의회 회장과 2006년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등이 신 씨를 추천한 것이지 다른 외압이나 청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혹들
검찰이 30일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과 신정아 씨를 구속기소하면서 수사는 일단락됐지만 검찰이 파헤쳐야 할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비자금 조성 경위와 용처, 김 회장의 올해 2월 특별사면 과정 등은 검찰이 추가로 수사해야 할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중순 수사팀에 합류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1과 소속 검사 3명은 당분간 대검으로 복귀하지 않고 서부지검에 머물기로 했다.
검찰은 김 회장이 쌍용양회의 계열사 4, 5곳과의 허위 거래를 통해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보고 있다.
옛 쌍용그룹은 외환위기 후 공적자금이 무려 1조 원 투입됐으나 대부분 회수되지 않았다. 김 회장이 2005년 가까스로 워크아웃을 졸업한 쌍용양회를 이용해 또다시 돈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난 만큼 검찰은 김 회장의 비자금 조성 경위와 용처에 대해 철저히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김 회장은 이 돈 가운데 3억 원을 변 전 실장에게 제공했으며, 검찰 안팎에서는 김 회장이 정치인 여러 명에 대해서도 금품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의 불법 자금 수수 사실이 확인되면 소속 정당에 따라 상당한 파문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또 신 씨의 학력 위조를 적극적으로 은폐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세운 울산 울주군 흥덕사에 국고 10억 원을 배정받은 동국대 이사장 영배 스님의 개인 비리 의혹도 수사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검찰의 수사 진행 여부와 관계없이 신 씨와 관련된 각종 의혹이 해소될지도 관심이다. 검찰은 변 전 실장 외 제3의 고위층은 없다고 밝혔지만 신 씨의 비호세력이 변 전 실장 1명뿐일까라는 국민의 궁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록은 통상 2년치밖에 보관되지 않기 때문에 변 전 실장이 청와대에서 근무하기 이전에 신 씨가 청와대를 출입했는지에 대한 조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한계점도 지적되고 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