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 파문 1년… 철문안서 24시간 ‘검은 이야기’

  • 입력 2007년 8월 16일 03시 06분


《14일 오후 9시 서울 노원구 상계동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근처의 작은 상가 건물 2층. 간판은 없었다. 그저 회색 철문만이 굳게 닫혀 있었다. 기자가 문 앞에서 30초 정도 기다리자 40대 남자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어떻게 왔어요?” “이○○ 씨 소개로 왔습니다.” 남자는 한참 동안 기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출입을 허락했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2m 정도 앞에 또 하나의 철문이 있었다. 2개의 철문을 통과하고 나니 120m² 정도 크기의 사무실에 대표적 불법 사행성 오락기인 ‘바다이야기’ 30여 대가 놓여 있었다. 어두운 조명에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게임기의 소리를 완전히 꺼놓아 게임장 안은 적막했다.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간간이 터져 나오는 탄성이 적막감을 깼다.》

겉은 빈사무실 위장… 종업원 철통 경계 속 단골장사

서울 - 경기 - 부산 - 인천등 사행성 게임장 다시 활개

게임장 안에는 20여 명이 있었다. 대부분이 30, 40대 남성이었지만 20대로 보이는 여성과 주부로 보이는 30대 여성도 눈에 띄었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게임기 한 대를 배정받았다. 종업원은 “어제도 이 게임기에서 고래(대박을 의미)가 떴다”며 옅은 미소를 보냈다. 1시간여 동안 9만 원을 잃은 뒤 게임장을 나서자 “다음에 또 오라”는 인사와 함께 종업원이 철문을 열어 줬다.

‘바다이야기 파문’ 그 후 1년, 수사기관이 총동원돼 사행성 게임과의 전쟁을 벌였지만 바다이야기는 여전히 건재했다.

오히려 이들의 ‘비밀 영업’은 점점 지능화되고 있다. 밖에서 보면 창문이 모두 막혀 있거나 검은 테이프를 붙여 놓아 안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이중 삼중 철문으로 막아 놓아 경찰이 단속을 나와도 쉽게 들어갈 수가 없다.

업소 안팎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출입자를 꼼꼼히 체크한다. 게임장에 들어가려면 단골손님과 동행하거나 단골손님의 이름을 대야만 한다.

기자에게 여러 게임장의 위치를 알려 준 제보자는 “게임장 근처로 가면 절대 휴대전화를 자주 열어보거나 두리번거리지 마라”고 귀띔했다.

이날 오후 10시 반경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또 다른 게임장을 찾았다. 이 게임장 입구에는 ‘임대 문의’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어 빈사무실처럼 보였다.

게임장이 있는 건물 밖에는 종업원이 배치돼 경찰의 단속에 대비했다.

게임장에서 만난 한 종업원은 “낮에는 30, 40대 주부가, 밤에는 자영업자나 회사원이 주 고객”이라며 “오후 11시부터 오전 2시까지가 ‘피크 타임’인데 휴일 전날에는 오후 9시에는 와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는 수락산역 인근에서 최소 게임장 4곳이, 방학동과 도봉구 쌍문동 일대에서 10여 곳의 게임장이 성업 중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경기 부산 인천 순으로 사행성 게임장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특히 경기도에선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등 주로 신도시에서 사행성 게임장이 암암리에 영업을 했지만 최근에는 수원 광명 구리 파주시로 독버섯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는 것.

부산은 연산교차로와 서면교차로 일대에 사행성 게임장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부산지방경찰청은 5∼7월 업소 105곳을 단속해 게임기 4500대와 상품권 25만 장을 압수했다.

전국적으로 사행성 오락실에 대한 단속 건수는 지난해 7만여 건, 올해 상반기 3만여 건에 이른다.

하지만 ‘두더지 게임’처럼 한 지역을 집중 단속하면 다른 지역에서 사행성 게임장이 다시 고개를 내밀어 단속에 애를 먹고 있다.

경찰청 생활질서과 관계자는 “사행성 게임장을 상시 단속하는 체제를 가동하고 있지만 ‘풍선 효과’가 커 근절이 쉽지 않다”며 “앞으로도 사행성 게임장 단속에 경찰력을 최대한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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