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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2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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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출한 인력 양성은 국가의 명운이 달린 국가적 과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영재라는 개념이 너무 획일적이어서 모든 분야를 다 잘하는 사람으로 키우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영재학교에 보내기 위한 학원이 늘고 있다지 않습니까.”(김신배 SK텔레콤 사장)
서 총장과 김 사장은 본보 주관으로 열린 ‘세계적 과학인력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특별 대담에서 현재의 과학인재 양성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특별 대담은 본보 경제부 김광현 차장의 사회로 26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2가 신라호텔 콘퍼런스룸에서 진행됐다.》
사회=김광현 경제부차장
―두 분 모두 미국 경험이 많으신데 한국의 과학교육 시스템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서 총장=한국은 어린 학생들이 대학 입시에 너무 들볶이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법을 가르치는 데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겁니다. 교육을 자율화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정부는 교육 목표만 세우고 금전적인 지원을 하고 교육계에 자율권을 줘야 해요.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정부가 자꾸 과학논문인용색인(SCI)에 오른 논문 수 같은 결과에만 치중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면 양질의 논문이 잘 안 나오고 논문 편수는 적지만 잠재력이 많은 20, 30대 젊은 연구자들을 키워 내지 못하게 됩니다.
DNA 이중 나선을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 잡슨과 크릭도 당시 나이가 20, 30대였죠. 아마 한국 같았으면 이들은 취직도 못했을 겁니다.
▽김 사장=교육 방법도 시장경제 원리처럼 경쟁에 맡기는 것이 좋다는 말씀이군요. 저도 동감입니다.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 점수 위주의 평가로 학생들을 관리해서는 곤란합니다. 정부가 메뉴(학과목)를 많이 만들어 놓았지만 이 시스템에서 학생들은 점수 따기 쉬운 과목만 선택하게 될 겁니다. 각자의 흥미와 특성에 맞는 길을 가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규격화된 인재 양성 시스템, 평준화 시스템은 문제가 많습니다.
―현재 정부의 과학 정책이 어떻다고 보십니까.
이 질문에 서 총장은 정부 측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조심스러운지 처음에는 “의견 없습니다”라고 했다가 그래도 할 말은 해야 되겠다 싶어서인지 “솔직히 말하면 (정부의 정책에 대해) 생각이 많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서 총장=우선 한국이 이만큼 발전한 것은 정부, 학교, 기업 모두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문제는 ‘20년 뒤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입니다. 정부는 매년 10조 원 정도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합니다. 이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국방, 우주, 생명 분야처럼 민간이 하기 어려운 부분을 정부가 담당하고 나머지는 민간에 맡겨야 합니다. 지원 방식도 정보기술, 바이오 등 분야에 투자하는 것보다 해당 연구자에게 투자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세계적으로 연구개발 투자에 성공한 나라가 있고 실패한 나라가 있습니다. 이 사례들을 잘 분석해 투자 대비 성과를 고려해 과학 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김 사장=중국은 정보기술, 바이오기술 등 주요 분야에서 연구 실적이 풍부하고 잠재력이 있는 인재를 유치해 정부가 지원하고 있습니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시분할동기식 부호분할다중접속(TDSCDMA) 등 중국의 기술 구축 사례를 볼 때마다 좋은 인재를 많이 확보했다는 사실을 통감합니다.
▽서 총장=또 한 번 말하지만 한국은 20년 뒤 먹고살 문제를 걱정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기술은 들여오면 됐지만 이젠 특허에 걸려 그렇게 못합니다. 리스크를 안고 연구 개발자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리스크를 지지 않으려는 것이 사실은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KAIST는 과학 영재급 학생들이 몰리는 대표적인 대학이다. SK텔레콤도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고 양성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기업이어서 두 사람 모두 한국의 영재교육 시스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 과학영재(인재) 교육은 어떻게 보십니까.
▽김 사장=우리 사회에서 영재라는 개념이 너무 표준화 획일화되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재학교를 보내려고 학원을 다니고, 입시학원처럼 예상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데 정말 잘못된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영재교육 과정이 200가지 이상일 정도로 영재 육성 체계가 발전해 있어요.
싱가포르의 사례는 흥미롭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3년마다 시험을 보고 성적 우수자를 더 높은 과정으로 보내 공교육과 연계한 영재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탈락한 사람들에게도 끊임없이 기회를 주는 대체교육 체계가 마련돼 있어 평생교육 체제의 주요 축을 이루고 있어요. 그 외에 영재교육에 대한 거부감도 극복해야 합니다. 우열반 편성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는 것도 영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서 총장=한국 영재교육은 형식은 외국 제도를 많이 따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육 과정에서 큰 차이가 나요. 한국은 수학경시대회 과학경시대회 등의 성적으로 뽑지만 미국은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어요. 또 미국에선 각자의 특성과 관심 분야를 진단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데 한국은 영재학교에서조차 입시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문제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이공계의 전망이 그렇게 어두운가요?
▽서 총장=부모나 학생이나 외환위기 때 엔지니어들이 직장에서 대거 나갔던 경험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연구 파트는 분야가 한정돼 있다 보니 승진도 한계가 있고, 같은 경력의 다른 직종에 비해 연봉이 낮으니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지금 의대를 가는 학생이 많아지면 10년 뒤엔 공급이 넘쳐 의대의 인기가 떨어질 겁니다. 다만 이공계 출신의 처우와 환경이 현재보다 월등히 개선돼야 합니다. ‘20년 뒤 미래를 책임지는 것은 과학기술’이라고 말만 해서는 안 됩니다.
▽김 사장=많은 회사가 기술 혁신을 부르짖는데도 기업들이 이공계 채용을 기피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곰곰이 따져 봐야 해요. 이는 이공계의 학문적 특성이나 기업의 채용 기피라는 현상에서 나온 문제만은 아닙니다. 먼저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지식 기반 서비스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식 기반 서비스업도 향후 우리 기업들에 먹을거리를 제공할 성장동력인 만큼 학문적 지식 외에도 창의성,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이공계 인재가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 회사도 신입사원 가운데 50%가 이공계 전공자입니다. 연구자가 관리직으로 가지 않고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도 내부에 만들었습니다.
▽서 총장=미국과 독일도 이공계 기피 현상이 있는 게 현실입니다. 나라 형편이 좋을수록 딴 일을 할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에요. 결국 과학기술계가 좋은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선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정부나 대학, 기업에서 처우를 잘해 주어야겠지요.
정리=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임소형 동아사이언스기자 sohyung@donga.com
○ 서남표(71) KAIST 총장
△1959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졸업 △1965∼1969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 △1970∼현재 MIT 기계공학과 교수 △1984∼1988년 미국과학재단 공학담당 부총재 △1991∼2001년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 △2006년∼현재 KAIST 제13대 총장
○ 김신배(53) SK텔레콤 사장
△1978년 서울대 산업공학과 졸업 △1983∼198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1997∼1998년 SK텔레콤 사업전략담당 이사 △2002∼2004년 SK텔레콤 전략기획부문장 전무 △2004년∼현재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2007년∼현재 SK텔레콤 최고성장책임자(C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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