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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27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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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줌마가 가장 많은 학교.’
아줌마 237명이 ‘일’을 냈다. 올해 서울 마포구 염리동 학력인정학교인 일성여중고의 아줌마 학생들은 전원이 4년제 대학 또는 전문대에 합격했다. 이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포기했던 40∼60대 주부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지난 2년간 첫해에 중학교 과정을, 둘째 해에 고교 과정을 이수하는 강행군을 해 왔다.
‘바느질장이’에서 ‘한복 디자이너’로의 변신을 앞두고 있는 박양근(68·서울 성북구) 씨는 졸업식을 하루 앞둔 26일 연방 싱글벙글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박 씨는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 38년간 한복점을 운영해 왔다. 그는 2002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다 영어를 몰라 답답해서 혼이 났다고 한다. 귀국 후 영어학원에 등록하면서 공부를 시작한 박 씨는 2004년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지난해 일성여중고에 진학했다. 평생 바느질을 하느라 나빠진 눈 때문에 책을 볼 때는 돋보기를, 칠판을 볼 때는 근시 안경을 번갈아 쓰면서 공부 삼매경에 빠졌다. 박 씨는 서울 지역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 중 최고령자였으며 2년제인 배화여대 전통의상과에 합격해 ‘07학번 새내기’가 된다.
지난해 여름 피부암 진단을 받은 이선임(61·서울 은평구) 씨는 ‘철의 여인’으로 불린다. 지난해 입학한 그는 공부하다 피부암 진단을 받고 실의에 빠졌다.
“남은 생을 ‘멋지고 고상하게’ 살려고 학교에 입학했는데 암이라니….”
이 씨는 “당분간 학교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담임교사에게 말했지만 막 재미를 들인 학교 공부를 쉽게 그만둘 수는 없었다. 학업을 계속해 한세대 상담심리학과에 합격한 그는 “요즘 영어로 된 간판이 많잖아요.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는 ‘까막눈’이었죠. 영어를 배운 뒤에는 거리에 나가도, 자식들과 얘기할 때도 자신 있고 신이 나요”라고 말했다.
이복순(62·서울 은평구) 씨는 충북 음성군 꽃동네에서 16년간 주방 봉사활동을 했다. 결석 한 번 하지 않은 ‘모범생’인 그는 ‘착한 학생’이다. 일찍 등교해 재활용 분리수거, 화장실 청소 등을 도맡아 했다. 지난해 5월에는 서울시교육감의 봉사부문 표창장도 받았다.
한국 최초의 민간 학술단체인 조선어연구회의 창립에 참여한 임경재(당시 휘문고 교장) 선생의 손녀 임용자(64·경기 부천시) 씨는 배화여대 전통조리학과에 성적우수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곰탕집을 운영하기도 했던 임 씨는 방광암 말기 진단을 받은 남편의 병간호를 하면서도 틈틈이 공부를 했다.
임 씨는 “힘든 가정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서 지식인이었던 할아버지께 항상 송구스러웠다”며 “지금이라도 대학을 가게 돼서 할아버지께 덜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고교반 담임을 맡고 있는 김상현 교사는 “일반 고교에선 잠자거나 떠드는 학생이 많다고 하지만 주부 학생들은 교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정말 열심히 공부해요”라며 “간혹 수업 준비를 제대로 못한 날은 죄송스러울 정도죠”라고 말했다.
오후 2시에 수업이 끝나더라도 억척스럽게 ‘나머지 공부’를 하느라 학교에 남아 있었던 학생들이 27일 오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서울 마포문화센터 아트홀에서 졸업식을 올리게 된다.
일성여중고는 6·25전쟁 때 함경남도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 자녀와 전쟁고아 등을 가르칠 목적으로 1952년에 세운 야학이었다. 올해 개교 55주년을 맞았으며 지금까지 졸업생 3만8000여 명을 배출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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