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벌써 선거? 동대표 뽑았죠!

  • 입력 2007년 1월 2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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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선거관리위원회가 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주관한 아파트 동대표 선출 선거에서 초원 아파트의 한 주민이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며 손가락으로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대전일보
27일 선거관리위원회가 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주관한 아파트 동대표 선출 선거에서 초원 아파트의 한 주민이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며 손가락으로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대전일보
토요일인 27일. 쌀쌀한 날씨 속에 눈보라까지 휘날렸지만 아이를 업은 아주머니, 70대 노인, 회사원 등이 충남 천안시 신방동 신촌초등학교 급식실로 모여들었다.

사상 처음으로 선거관리위원회가 직접 주관한 초원아파트(4168가구, 주민 2만여 명)의 동대표 20명을 뽑는 선거가 실시돼 주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었다.

투표는 유권자가 16대의 컴퓨터 화면에서 사진과 이름, 기호가 표시된 후보자를 직접 선택하는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진행됐다.

천안선관위는 오후 7시 투표가 종료되자 불과 5분 만에 개표를 마치고 곧바로 이 아파트 101∼116동 16개동 대표 당선자 20명(가구 수가 많은 4개동은 동대표가 2명)에게 당선증을 교부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선관위에 선거관리비용으로 1400만 원을 지불했다. ○ 선관위가 나선 까닭

선관위의 선거 주관은 지난해 6월 말 대전지법 천안지원의 판결이 계기가 됐다.

법원은 이 아파트 주민 A 씨가 아파트 동대표 B 씨 등을 상대로 낸 동대표 무효 소송(입주민대표자 지위확인 소송)에서 “선관위의 위탁 관리하에 동대표를 선출하라”고 판결했다. 동대표 선거를 둘러싸고 수년째 주민 간 갈등이 계속됐기 때문에 판결이 나도 쉽사리 승복하지 않고 시비가 계속될 것이라고 본 것.

초원아파트 주민들은 하자보수금 예치, 주말장터 등 여러 가지 아파트 현안을 놓고 3개 파로 갈라져 2002년 말부터 갈등을 빚어 왔고 소송도 잇따랐다.

주민들은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한때 위탁 선거를 놓고 논란을 벌이다 결국 최근 3000여 명이 함께 서명한 선거위탁요청서를 선관위에 제출했다. 소송의 당사자이면서 이번에 116동 대표로 당선된 윤춘기(34·자영업) 씨는 “소송 당사자들이 함께 동대표로 당선됐다”며 “앞으로 아파트 현안을 놓고 이견이 적지 않겠지만 적어도 대표성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인 갈등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공직선거 뺨친 동대표 선거

선관위는 아파트 동대표 선거의 전례가 없는 만큼 이번 선거를 지방선거에 준해 치렀다.

후보자에게서 인물 소개와 공약을 담은 벽보와 공보를 제출받아 아파트 게시판에 붙이고 전 가구에 발송했다. 다만 선거로 인한 낭비를 막기 위해 벽보나 공보는 A4 용지 크기에 저렴한 재질을 사용했다.

선거인과 후보자의 연령은 만 19세 이상으로 제한했다. 이번 당선자 중에는 대학교 졸업반 학생도 있다.

이에 앞서 선관위는 공명선거 다짐대회를 여는 한편 선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주력했다. 아파트 곳곳에 ‘초원아파트의 미래와 발전, 여러분의 투표에 달려 있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내걸었다. 별도의 소견발표회가 없는 점을 감안해 일반 선거와는 달리 호별 방문이나 어깨띠 홍보, 별도의 유인물 배포 등을 허용했다.

천안선관위 진중록 지도주임은 “아파트 동대표 선출을 둘러싼 갈등이 적지 않은 만큼 선관위의 동대표 선거 주관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며 “업무량은 늘어나겠지만 일상생활 속에 민주주의의 원칙이 깊숙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안=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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