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따돌림 없는 하늘에서 아들아, 이젠 웃음 되찾으렴”

  • 입력 2007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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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전남 순천시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아들의 자살 동기를 1년 6개월 만에 밝혀낸 임영순 씨가 학교 졸업앨범에 담긴 아들의 생전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순천=박영철  기자
2005년 5월 전남 순천시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아들의 자살 동기를 1년 6개월 만에 밝혀낸 임영순 씨가 학교 졸업앨범에 담긴 아들의 생전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순천=박영철 기자
“누구를 처벌하기 위해 나선 일이 아닙니다. 더는 우리 아들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꼭 진상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임영순(51·전남 순천시 용당동) 씨는 3일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어루만지면서 “저세상으로 떠난 아들이 이젠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임 씨의 아들 종빈(당시 16세) 군은 순천시 S중 3학년이던 2005년 5월 17일 자신이 사는 아파트 16층에서 투신자살했다.

종빈 군은 거실 서랍장 위에 “교우 문제, 성적 문제, 진로 문제로 고민해 왔는데…. 내가 없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저승에서라도 우리 집이 잘살도록 도울게요”라고 적은 유서 한 장을 남겼다.

2남 1녀의 막내아들로 말썽 한 번 부리지 않았던 아들이 그렇게 세상을 떠난 뒤 임 씨는 말을 잃었다.

임 씨는 사고 당일 장례식장을 찾은 아들의 같은 반 친구들에게 “종빈이가 왕따를 당해 몹시 괴로워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장례식 날 학생 2명이 화장장을 찾아와 “우리가 종빈이를 괴롭혔다”며 무릎을 꿇고 사죄했고 임 씨는 아들이 학교 폭력의 희생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임 씨는 학교와 교육청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경찰에도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학교와 교육청은 아들의 자살이 집단 괴롭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짤막한 회신만 보내 왔다. 경찰도 단순히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더는 기댈 곳이 없었던 임 씨는 슈퍼마켓 일을 부인에게 맡긴 채 진실을 찾아 나섰다.

아들의 같은 반 친구들과 옆 반 학생 등 100여 명을 만나 당시 아들이 학교에서 겪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고, 30여 명의 학생이 진술서와 반성문을 보내왔다. 10여 명은 자신이 직접 종빈이를 괴롭힌 당사자라고 용서를 빌었다.

임 씨는 “아들이 집에 오면 화장실부터 간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학교에서 화장실을 가면 아이들한테 맞을까봐 겁이 나 소변을 꾹 참았던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몇몇 학생은 “학교에서 ‘성적 비관 때문이지 왕따나 괴롭힘으로 죽었다’고 절대 말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적었다.

임 씨는 “가장 안전하다는 교실에서 1년이 넘도록 집단 괴롭힘을 당할 때까지 학교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애들도 뒤늦게 사죄를 하며 용서를 구하는 마당에 학교 측은 여전히 사건을 은폐하기에 급급해하고 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러나 담임교사였던 A 씨는 “당시 학생들에게 물어봤지만 학교 폭력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며 “경찰에서 의혹이 있는 부분은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경찰서는 임 씨가 최근 교육인적자원부에 자살 원인을 규명해 달라는 탄원서를 내자 수사에 들어갔다.

순천=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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