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시사이슈로 생각 넓히기]황진이 열풍

  • 입력 2006년 12월 26일 02시 57분


TV 드라마 ‘황진이’. 최근 조선시대 기생 황진이가 TV와 영화, 뮤지컬 등 대중문화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다뤄지면서 기생문화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기생은 고도의 전문직 여성이자 만능 예능인인가, 아니면 여성의 성을 통제하고 갈취하는 남성 지배 사회의 산물인가. 동아일보 자료 사진
TV 드라마 ‘황진이’. 최근 조선시대 기생 황진이가 TV와 영화, 뮤지컬 등 대중문화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다뤄지면서 기생문화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기생은 고도의 전문직 여성이자 만능 예능인인가, 아니면 여성의 성을 통제하고 갈취하는 남성 지배 사회의 산물인가. 동아일보 자료 사진
《요즘 출판계에서는 기생 ‘황진이’ 관련 서적이 붐을 이루고 있다. 무려 20여 종에 이른다. TV, 영화, 뮤지컬 등에서도 황진이에 대한 조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현재의 대중문화 코드와 황진이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기생문화가 오늘날 왜 다시 조명되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이런 문화가 과연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진정한 문화인지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는 사람들의 생각을 정리해 보자.》

한국, 중국, 일본에서 기생을 이르는 말은 모두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어휘인 ‘기생(妓生·a singing and dancing girl)’은 ‘잔치나 술자리에 나가 노래와 춤 등으로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던 여자’로 규정할 수 있는데, ‘예기(藝妓)’란 말도 함께 쓰였다.

‘기생’이라는 한자어는 조선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등장한다. 조선시대에 기생을 관장하고 교육을 맡아보던 기관은 기생청이다. 이곳에서는 기생이 갖춰야 할 가무, 시, 서화 등을 가르쳐 상류 고관이나 유생들의 접대에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권번(券番)이 기생청의 기능을 대신했다고 볼 수 있다. 권번은 일제 강점기에 조직된 기생들의 지역별 조합이다. 권번에서는 노래와 춤을 가르쳐 기생을 양성하는 한편, 기생들의 활동무대인 요릿집을 지휘하고 그들의 화대(花代)를 받아주는 기능도 담당했다. 당시 기생들은 허가제로 되어 있어 권번에 적을 두고 세금을 내야 했으며, 권번 기생은 다른 기녀들과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1930년대에는 평양 기성권번 기생양성소가 3년 학제로서 명성을 구가하고 있었다.

권번은 지금의 연예인 기획사, 매니저 노릇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1930년대 이후 권번 기생들은 방송, 음악, 영화, CF, 이벤트 행사의 주역인 현재의 연예인과 유사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또한 권번 기생은 당국으로부터 ‘기생영업인가증’을 받아야 했는데, 오늘날 ‘개인사업자 등록증’과 같다. 정식 직업인으로서 권번 기생들은 한 가지를 가르치면 열 가지를 아는 만능 재주꾼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대중문화에서 기생이 왜 이렇게 각광 받는가?

먼저, 기생은 시각적 자극을 원하는 요즘 관객들의 취향에 딱 맞는 소재이다. 다른 사극에서는 볼 수 없는 화려함이 있다. 심지어는 전통 여성 한복에서는 보기 드문 검정색 톤이 사극 의상의 트렌드가 됐을 정도이다. 그릇, 가구 등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옛 기생이 문화 아이콘으로 급부상하는 이유는 시와 가무에 대한 탁월한 능력, 그리고 미모 등 기생 특유의 속성이 현대 문화예술 산업 자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TV 드라마 ‘황진이’를 보자.

기생을 고도의 전문직 여성이자 만능 예능인으로 풀어 나간다. 과거 한때 예능인 집단을 비하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기생에 대한 편견까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기생을 다루는 대중문화 작품들을 보면 기생은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 나가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욕망의 대상으로서 그려지던 기존의 기생 이미지를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은 많은 현대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적 결정권을 생각하게 만드는 심리적 촉진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반면, 기생을 조선시대 예능인의 아이콘으로 삼는 발상이 기만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생이 ‘여성의 성을 통제하고 갈취하는 남성 지배 사회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력하지만 매혹적이고, 원시적이지만 에로틱한 여성으로 조선을 표상하는 행위는 서양인들이 동양을 여성화함으로써 동양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정당화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기생에 대한 미화는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고자 한 의도에서 파생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기생문화는 이 시대의 또 다른 문화 아이콘이다. 인간의 내면적 외면적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다시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경향에서 문화는 시작된다. 오늘날 기생문화에 대한 관심은 바로 우리들의 삶 속에서 무엇인가를 표출하고자 하는 표현 욕망의 발로일 수도 있다.

沼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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