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비타민]통합 교과형 논술 정체 밝히기(2)

  • 입력 2006년 11월 28일 03시 02분


《통합 교과형 논술의 특징을 살펴보기에 앞서 도입되는 배경을 먼저 점검해 보겠습니다. 논술이 왜, 그리고 어떤 점에서 달라지는지 확인해 보아야 이에 대비하는 교육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술은 원래 통합교과적이라서 ‘통합 교과형 논술’을 마치 새로운 논술인 듯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편의상 2008년부터 시행되는 논술이라는 의미를 부각하여 쓰겠습니다.》

왜 지금 도입되었을까

통합 교과형 논술이 도입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역시 평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논술은 선발고사이기 때문에 선발 환경에 따라서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수능이 등급화 되면서 변별력이 약화되는 바람에 각 대학이 통합형 논술을 들고 나온 것이지요.

우선 논술 답안은 어떻게 평가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실제 채점 방식과 기준은 세밀한 부분에서 대학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통점을 뽑아 본다면 대입 논술 답안은 크게 A, B, C, D 네 등급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이때 네 등급으로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크게 글의 내용과 형식, 두 가지입니다. 이런 기준은 일반적인 것입니다. 글은 어떤 글이건 내용과 형식의 두 측면을 갖기 때문입니다. 내용을 평가하는 것은 ‘무엇을’ 썼는지 평가하는 것입니다. 형식을 평가하는 것은 ‘어떻게’ 썼는지 평가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글에 대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썼는지 평가하게 되는데 논술 답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형식이란 서론-본론-결론 같은 정해진 틀을 꼭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논의 내용에 맞게 논리적이고 적절한 방식으로 구성하는 논의 방식을 말합니다. 수필은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형식이지만 시나 희곡은 나름의 구성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써야 할 논술 답안도 나름의 논의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논증이라는 방식입니다. 논증이란 말 그대로 보자면 ‘논리적인 증명, 논리적인 정당화’를 말합니다. 따라서 논증적 글에는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첫째는 증명하고 정당화해야 할 대상, 즉 결론이 필요합니다. 다른 글은 결론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지만, 논증적인 글은 반드시 결론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증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근거를 반드시 제시해야 합니다. 글을 쓰면서 근거를 제시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경우는 논증적인 글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논증적 글의 한 형태인 논술 답안도 반드시 결론과 근거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논술에 논증만 들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기술할 줄도 알아야 하고 그 문제가 왜 생겼는지 설명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도적인 부분은 역시 논증입니다.

그렇다면 A, B, C, D급 답안은 각각 어떻게 평가될까요? 우선 A급 답안은 형식적으로 큰 문제가 없으면서 내용이 탁월한 글입니다. 달리 말해 논리적 구성에 별 문제가 없으면서 자기 나름의 독창적인 결론과 깊이 있고 다각적으로 근거를 제시하는 글입니다. D급 답안은 어떤 글일까요? 내용에 상관없이 형식이 갖춰지지 못한 답안입니다. 예를 들어 결론이 무엇인지 알 수 없거나, 결론은 있지만 근거 제시가 전혀 되지 않을 경우 D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채점자가 학생을 한 번 만나서 왜 이렇게 썼는지 대화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 답안입니다.

그렇다면 B와 C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두 답안은 내용은 비슷한 수준입니다. 특별히 탁월한 내용 없이 상식적이고 누구나 할 법한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식 측면에서 차이가 나게 됩니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논리적이고 논증적으로 잘 엮어서 체계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면 B로 평가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힘들 경우, C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B와 C는 대부분 형식적 측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입시에서 B급 답안이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수능이 변별력이 있었고 따라서 특별히 상향 지원한 경우가 아니라면 논술에서 B만 맞으면 자신의 수능 점수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입시의 맥락을 떠나 인문 교육으로서의 논술 교육이 지향하는 일차적 목표도 B입니다. 생각이 탁월하건 평범하건 자신이 생각한 것은 논리적으로 서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B급 답안은 의사소통 능력을 갖춘 답안입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집니다. 수능의 변별력이 약화되면서 논술에서 변별력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B와 C를 가려내는 데 초점을 둘 수 없습니다. A와 B를 가려내는 데에 논술의 초점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이제 형식적 측면보다는 내용의 측면이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논리적 구성은 기본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내용이 좋은 답안을 쉽게 선별할 수 있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달리 말하면 의사소통 능력은 기본이고,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통합 교과형 논술이라는 것이 창의력 중심의 논술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도대체 창의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그것이 우리의 다음 과제입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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