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국제결혼, 학대받는 외국인 아내들

  • 입력 2006년 10월 7일 20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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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이 돈값도 못해”…막가는 인신매매형 짝짓기

2005년 한 해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 여성은 3만여 명.10쌍 중 한 쌍이 한국 남성-외국 여성 부부다. 이혼 역시2003년 583건, 2004년 1611건, 2005년 2444건으로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남편의 폭행과 감금, 학대에 시달리는여성들은 가정을 떠나고, 이들의 자녀는 붕괴되는 가정환경에고스란히 노출된다. 여성을 ‘상품’으로 인식하게 만드는국제결혼 중개업체들의 행태와 이로 인해 야기된아시아 전역의 ‘반한(反韓)감정’ 실체.

지난해 11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지 5년 된 필리핀 여성이 의처증 증세를 보이던 남편으로부터 둔기로 폭행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함께 폭행당한 두 자녀는 사망한 것.

2003년 3월에는 결혼생활 8년 동안 구타에 시달린 한국 귀화 필리핀 여성이 남편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다 아파트 10층 베란다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는 사고도 있었다. 남편의 구타 이유는 그녀가 한국 풍습에 익숙하지 않고 필리핀으로 돈을 부친다는 것이었다. 숨진 그녀의 턱 밑에서 칼에 베어 생긴 5㎝ 길이의 상처가 발견되기도 했다.

2003년부터 급증한 국제결혼이 야기하는 갖가지 사회 문제는 국내 통계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제결혼 가정 실태조사’에 따르면 언어폭력과 신체적 폭력 등 가정폭력을 경험한 외국인 이주여성은 10명에 3명꼴이었고, 성적 학대에 시달리는 이도 23.1%를 차지했다. 최근 한국인권재단이 주최한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한국살이’ 세미나에서 이주여성인권연대 김민정 정책국장이 소개한 이주여성의 성 학대 사례는 충격적이다.

“남편이 요구하는 성관계를 거부하면 머리채를 잡아 끌고 강제로 베란다로 내쫓았고, 추운 겨울에도 이불 한 장 없이 그곳에서 자라고 한다. 옷을 다 벗게 하고 입으로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성기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등 이것저것 요구했다. 음란 비디오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똑같이 해달라고 요구한다. 싫다고 거부하면 때리고 옷을 다 찢어버린다. 너무 무서워서 무릎 꿇고 빌기도 여러 번 했다. 남편이 동물 같다.”

“입국한 지 사흘 만에 남편이 때렸다. 술 마시고 성관계를 요구했는데 싫다고 하자 주먹으로 얼굴을 마구 때리고 침을 뱉었다. 생리 중에도 성관계를 요구해서 거부하자 생리대를 얼굴에 집어던졌다. 계속 때려서 어쩔 수 없이 응한 적도 있다.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이 너무 싫고 무섭다.”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된 결혼중개자

국제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인권 유린은 단순한 국내 문제가 아니다. 그로 인해 외국 여성의 출신국가와 마찰을 빚거나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이주기구 한국사무소 고현웅 소장은 “상업화한 국제결혼 중개 시스템이 이들 커플들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낳는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초 민간에서 시작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 지자체 주도로 변하면서 국제결혼이 크게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국제결혼이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인식되면서 2000여 개에 이르는 국제결혼 중개업체가 난립했고, 이들에 의한 인신매매성 결혼 중개가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은 “선을 볼 때 통역자는 남편이 기계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약혼한 적이 있으며 한 달 수입이 200만원이라고 했다. 근데 한국에 와서 보니 시골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공사장 일용노동자였다. 또 나와 결혼하기 전에 몽골 여성과 결혼했었는데 그 여성이 자해소동을 벌여 이혼했다고 하더라”고 털어놓았다.

“너 데려오느라 돈 많이 들었다”

외국인 며느리의 임신이 늦어지자 “비싼 이 ×이 돈값도 못한다”고 폭언을 퍼붓거나 부부싸움에서 남편이 “너 데려오느라 돈 많이 들었다”며 윽박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 한 남성은 자신의 고등학생 아들이 아침에 학교에 가는데 일찍 일어나 밥을 챙겨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19세 아내를 중개업자 집으로 보내고 자신이 낸 중개비용을 돌려달라고 소비자보호원에 진정서를 냈다.

고현웅 소장은 “인신매매성 국제결혼은 필리핀과 베트남 두 나라 모두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결혼을 하는 양 당사자 모두 국제결혼 관련법과 상대자 출신국에 대한 이해, 문제 발생시 해결방안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은 후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중개업체가 국제결혼 시스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국제결혼비자 신청 횟수를 제한하는 방안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가는’ 우즈벡 여성들

‘우즈베키스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운영자이자 중앙아시아 여행 전문가인 이한신씨는 최근 몇 개월에 걸쳐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는 “한국 남성과의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간 많은 여성이 한국 남성이라면 이를 간다”며 이렇게 우려했다.

“우즈베키스탄이나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 남자와 결혼한 여성 10명 중 6, 7명이 결혼 1~3년 안에 이혼한다고 보면 된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으로 시집올 때 경제적 부와 함께 신분상승을 기대하지만, 국제결혼을 하는 한국 남성들 중 많은 수가 국내에서 신붓감을 구하지 못한 경우다.

국제결혼을 한 한국 남성과 외국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자녀 수는 현재 7400여 명이고 이들 대부분은 초등학생 이하의 연령이다. 앞으로 이들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될 것이고 그 사이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수는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이들 가정의 문제는 장차 한국사회의 구성원이 될 성장기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내로 유입되는 이주노동자와 함께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급격한 증가는 ‘다인종·다문화 사회를 위한 인식 전환’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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