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잃어버린 51일’ 찾았다

  • 입력 2006년 7월 1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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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향토사료관이 30일 공개한 ‘임오유월일기’. 명성황후가 임오군란 때 궐 밖으로 피신할 당시의 행적이 비교적 상세히 적혀 있다. 사진 제공 대전시향토사료관
대전시향토사료관이 30일 공개한 ‘임오유월일기’. 명성황후가 임오군란 때 궐 밖으로 피신할 당시의 행적이 비교적 상세히 적혀 있다. 사진 제공 대전시향토사료관
임오군란으로 1882년 6월 13일 궁궐을 빠져나온 명성황후(1851∼1895)가 8월 1일 환궁할 때까지 51일간의 행적을 적은 일기가 발견됐다.

대전시향토사료관은 민응식(閔應植·1844∼?) 딸의 후손이 5월 초 기탁한 유물 279점 가운데 명성황후의 피신 행적이 담긴 ‘임오유월일기(壬午六月日記)’를 발견했다고 30일 밝혔다.

명성황후의 친척이자 신하로 이조·병조판서를 지낸 민응식은 임오군란 때 충북 충주시 자택을 명성황후의 피신처로 제공했다.

가로 14.7cm, 세로 20cm 크기의 8쪽짜리 일기는 당시 명성황후가 만난 인물, 식사 내용, 건강 상태, 이동 경로를 기록하고 있다.

‘6월 17일. 맑고 더웠다. 소나기가 왔다. (명성황후가) 그대로 머무르셨다. 감길탕 한 첩, 박하탕에 용뇌를 타서 올리니 드셨다. 다리의 부스럼 난 곳에 고름이 생겨 고약을 붙여 드렸다’ 등의 내용이다.

또 민응식의 집에만 머무른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7, 8곳으로 거처를 옮기며 고된 피신생활을 했다.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의 행적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통해 ‘충주 민응식의 집으로 몸을 피했다’라고만 전해져 왔다.

일기에는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왔을 때 붙인 방문을 시종에게 적어 오라고 명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양승률 학예연구사는 “대원군과 대립했던 명성황후가 피신 중 청나라에 군사를 요청했다고 알려졌지만 일기에는 그런 요청 사실이나 정치적 인물을 만난 기록이 없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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