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교 논술 클리닉]논술의 원리 ‘보이기’ 실전

  • 입력 2006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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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면 논점이 구체화 된다.

■ 해설

보이기는 논의해야 할 대상의 여러 측면을 살핌으로써 논의할 거리를 찾기 위해 생각을 구체화하는 사고 활동이다. 대상을 구성하거나 둘러싸고 있는 것을 눈에 보이듯이 드러내게 되면 논의의 초점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보이기’에는 상위, 하위, 인접, 이론 등 네 가지 양상이 있다.

이 만화를 보자. 1960년대의 시사만화 ‘파고다 영감’이다. 시골 사람이 ‘서울 구경’을 왔다. 파고다 영감은 한복을 입은 시골 청년에게 국회의사당, 아카데미 극장, 중앙청 같은 서울의 ‘상징’들을 열심히 설명해 준다. 그러다 파고다 영감이 흙탕물에 빠지는데, 시골 청년은 그 모습에도 ‘히야’라는 탄성을 내지른다.

파고다 영감은 국회의사당, 아카데미 극장, 중앙청, 흙탕물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단위 ‘서울’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개별 사례들을 하나의 상위 개념으로 묶는 사고 과정이 ‘상위’ 보이기이다.

다음으로 ‘상위’ 보이기의 역방향을 생각해보자. ‘서울’은 국회의사당, 아카데미 극장, 중앙청, 흙탕물 등의 구체적인 하위 상징들로 나누어 보여줄 수 있다. 이처럼 상위 개념에서 개별 사례로 나아가는 사고 과정이 ‘하위’ 보이기이다.

이 만화는 1960년대 시사만화이기 때문에 2006년의 ‘서울’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국회의사당의 위치가 바뀌었으며 아카데미 극장과 중앙청은 이미 사라졌거나 다른 건물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러나 1960년대 ‘서울’의 모습이 현재의 서울과 무엇이 같고 다른가를 확인하면 2006년의 ‘서울’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인접’ 보이기로 주로 시공간을 기준으로 삼아 비교나 대조를 통해 방증하는 것이다.

‘파고다 영감’에서는 1960년대의 ‘서울’을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로 흙탕물을 거론하며 만화를 마무리하고 있다. 국회의사당, 중앙청 등 당시 권력 기관의 부패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을 통해 시사만화의 성격이 분명해졌다. 여기서 활용된 방식이 ‘풍자’이다. ‘이론’ 보이기는 풍자, 속담, 경구와 같은 이론을 근거로 활용하는 것이다.

상위, 하위, 인접, 이론. 이 네 가지는 대상에 대한 논점을 구체화하는 사고 활동이다. 따라서 논의할 대상에 따라 선택적으로 수행할 수도 있고, 네 가지를 모두 적용할 수도 있다.

■ 응용

다음 글을 ‘보이기’의 네 요소로 구분하여 생각해 보자.

의식주(衣食住)는 인간의 생존을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의식주의 ‘상위’ 보이기)이다. 옛말에 ‘등 따습고 배 부르면 처자식도 몰라본다’(‘이론’ 보이기)고 했듯이 예전에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중시하였다. 하지만 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집은 인간의 생존 요소뿐만이 아니라 주요한 경제 요인(집의 ‘인접’ 보이기)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개인이 사고 팔 수 있는 재화 중에서 주택은 가장 가격이 높은 것(재화의 ‘하위’ 보이기)이 된 것이다.

반주원 파사쥬 논술 대표 강사

■ 제시문

(가) 양극화(polarization)를 말 그대로 풀이하면 중산층이 부유층과 빈곤층으로 분화해 간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산층이 빈곤층화하고 빈곤층의 삶의 질도 급속히 악화돼 간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있다.

경제위기 이후 양극화 논의가 급증하여 정부나 시민사회 모두에서 양극화 현상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는 이른바 ‘희망한국 21’이라는 사회안전망 계획을 발표한 바 있으며, 시민사회는 ‘양극화 해소 국민연대’를 출범시킨 바 있다. 양자 모두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해결이 시급하다는 인식도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아서 정부가 발표한 사회안전망 계획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만은 상존하고 있고, 그 계획이 설사 그대로 실행된다고 해도 피부에 와 닿는 양극화 해소책이 될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복지지출은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비중으로 한때 1990년대 중반보다 2배에 가까운 규모로 증가한 적도 있고 그 후 약간 감소하긴 했으나 여전히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제도에 대한 반감 역시 커졌으며 빈곤이나 불평등의 해소도 크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렇게 된 중요한 원인의 한 가지는 정부의 사회복지서비스의 미확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서비스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이 작은 것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제위기 이전 오래 전부터 사회복지서비스는 민간부문에 의해 공급되어 왔고 정부는 이들 민간부문 공급자 중 일정 요건을 갖춘 자에 대해 약간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이러한 지원방식이 경제위기 이후의 복지개혁 과정에서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1990년대 이후부터 이른바 ‘작은 정부론’이 유포되면서 정부의 고용규모를 증가시키는 데에는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공공부문에 비해 민간부문이 더 효율적이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이것은 공공부문의 비중이 충분히 큰 상태에서 가능한 이야기이지 우리처럼 공공부문 비중이 형편없이 낮은 경우에 민간부문은 공급자의 난립과 서비스에 대한 규제 미비로 오히려 부작용과 비효율이 나타날 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사회서비스 부문의 보건의료와 복지에 의해 주도되는 공공고용 비중을 크게 증가시켜야 한다. 이런 면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남찬섭, 사회양극화해소, 복지동향 2005년 11월호 사회서비스 부문의 공공고용비중을 크게 증가]

(나) 기업이 생산하는 여러 가지 상품은 수많은 소비자들에 의해 소비되며, 또한 기업체에서는 많은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의 의사 결정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내려진 것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기업은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공공성과 사회성을 추구하는 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해야 한다.

기업은 이윤 추구라는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적 가치의 실현에도 노력함으로써, 노사가 인격적인 평등한 관계 속에서 공존해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함께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물론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은 어디까지나 기업 형편에 따라 기업의 자발적인 의사 결정에 속한 문제이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은 한 경제 사회 안의 소비자, 근로자, 다른 기업, 정부 등과 밀접한 상호 의존 관계를 맺으면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성과를 사회와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은 육영 사업을 통한 인재 육성, 의료 사업을 통한 국민 건강 증진, 문화 사업을 통한 문화 발전, 사회 복지 사업을 통한 사회 보장의 증진, 장학 사업을 통한 교육 수혜 제공, 체육·레저 사업을 통한 여가 선용 기회의 확대 등 다양한 분야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 기업 홍보 성격의 행사나 일회성 사업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 이윤의 사회 환원이 장기적 차원에서 이익이 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한 신뢰성 획득은 기업의 장기적인 이윤 창출에도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은 기업이 생산 활동을 통해 얻은 이익을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다시 돌려주는 것으로, 기업의 사회에 대한 책임의 표현이자 이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고등학교 경제, 대한교과서]



○ 써서 보내요

논제 1. (가)를 읽고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는 이유와 대책에 대해 서술하시오.

논제 2. (가)의 입장에서 볼 때 (나)가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하시오.

논제 3. (가), (나)를 참고해 양극화 현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제시하시오.

○ 이 사이트로 보내세요

‘다음논제, 써서 보내요’에 대한 글을 다음 주 월요일까지 보내 주세요. 잘된 글 가운데 일부를 선정해 문화상품권을 보내드립

니다. 글 보내실 곳: www.easynonsul.com → 고교논술 →논술클리닉(www.easynonsul.com/High/Clinic/)

■ 논제

제시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허무주의의 긍정적 역할이 있는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

[제시문은 이지논술 4월 25일자 10면 또는 이지논술 사이트 참조]

■ 학생글

홍정현·경기 안양외국어고 1학년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오래전부터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①생각해 왔다. ②꼭 인생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기존의 가치에 대한 의심은 허무에 대해 고찰하는 관점을 제시했다. 이러한 관점을 허무주의라고 한다.

허무주의는 세가지 모습을 보인다. 첫 번째는 생활감정의 모습이다. ③인생에 대해 노래하는 여러 문학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삶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허무감을 바탕으로 한다. 두 번째 모습은 학문적 허무주의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 경외감을 벗어나 과학적으로 자연을 탐구한 과학자들처럼 기존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고 고민해서 발전적인 가치관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마지막 세 번째 모습은 희망을 잃고 가치를 부정하는 허무주의의 모습이다. 이 허무주의는 지구 종말이 다가온다며 집단적으로 자살을 하는 종교집단처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다.

1945년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민주공화국을 수립하지는 못했다. 미국과 소련이 38도선 이남과 이북에서 군정을 실시했고 이러한 대립 속에 우리나라도 좌익과 우익으로 분열됐다. 분열은 사회적 혼란을 불러왔고 사회적 혼란은 가치와 희망에 대한 불모의 허무주의를 불러왔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④이병주와 같은 지식인들은 자라나는 세대들을 보살피고 교육시키며 ⑤허무주의 극복의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회 전반적인 혼란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는 다른 문제들을 불러왔다. 개발중심의 발전은 환경을 오염시켰고 인간소외라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이러한 부작용의 치유는 ⑥우리 사회의 가치의 점검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물질적 요소를 중시하는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의심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의 재점검은 학문적 허무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단지 가치를 점검하는 것만으로는 ⑦긍정적인 문제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다. 허무주의의 진정한 긍정적 활용은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허무주의를 통해 문제점이 발견 되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⑧허무주의는 문제해결의 출발점이고 허무주의의 극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시인 김영랑은 시 '독을 차고'에서 독을 차도 허무하기는 마찬가지라는 벗에게 자신은 자신의 길을 선선히 가겠다고 말했다. 허무주의에 빠져 모든 희망과 가치를 상실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허무주의를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것은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는 긍정적 방안일 수 있다. ⑨사회 구성원 모두가 발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허무주의를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선선히 나아가야 한다.

■ 첨삭지도

이번 논술은 ‘허무주의’라는 다소 난해한 철학적 주제를 논제로 삼아서인지 많은 학생이 어려워했다. 논제만 보아서는 제시문을 정확히 독해해 견해의 논리적인 흐름을 보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호에 응시한 학생 모두가 칭찬할 만하다. 특히 이 학생의 글은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무난하게 답안을 전개한 점이 좋았다. 결론 부분에 김영랑의 시를 인용한 것도 적절했다. 다만 사례의 제시가 부정확한 점과 문장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① 문맥상 ‘인식(認識)해 왔다’로 바꾸는 것이 좋다.

② 문맥이 좀 어색하다. 일반적으로 ‘∼주의’라 함은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을 의미한다. 따라서 ‘허무주의’를 ‘관점’으로 정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바꾸어주는 것이 좋겠다. ⇒ 허무를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했는데, 이러한 인식의 틀이 체계화 된 것을 허무주의라고 한다.

③ ‘생활감정으로의 허무’인데 사례가 적절치 않다. 문학 작품에서 다루는 ‘허무함’은 그 종류나 범위가 방대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는 일반적으로 학생이 생활 가운데 느낄 수 있는 허무, 예를 들어 힘써 준비했던 축제가 끝나고 났을 때의 허무함을 예로 들어도 괜찮다.

④ 제시문 (가)는 이병주가 쓴 ‘관부연락선’이라는 소설의 일부이다. 따라서 ‘제시문 (가)의 주인공과 같은’으로 바꾸어야 한다.

⑤ 필요 이상으로 문장이 길다. ‘허무주의를 극복하려고’ 정도로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

⑥ ‘우리 사회에 깔려 있는 기존 가치를 점검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도로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 이 학생의 경우 ⑤, ⑥과 같이 ‘∼의’ 형태로 문장을 늘이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논술을 하고 나면 꼭 퇴고 과정을 거쳐 무리하게 문장을 만들어 낸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⑦ 역시 간단명료하게 문장을 만들어주자. ⇒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⑧ 문장이 어색하다. ⇒ ‘역설적으로 허무주의는 문제해결의 출발점이지만 동시에 극복 대상인 것이다.’

⑨ 바로 앞에 김영랑의 ‘독을 차고’라는 시를 인용하여 논지를 강화한 것에 비해 마지막 결론은 다소 힘이 떨어지고 있다. 글 전체와 결론의 유기성을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이 바꾸면 적당할 것이다. ⇒ 발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허무주의의 긍정적 역할을 수용하여 ‘약이 되는 독’을 가지고 선선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학생이 철학을 어렵게 생각하고, 또 기피하고 있다. 그러나 논술에서 요구하는 논리적 사고는 결국 생활 속에서 고민해보아야 하는 철학적 인식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논제와 같이 철학을 일상생활과 관련지어 공부한다면 조금 쉽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만기 유웨이 중앙교육 평가이사 유웨이에듀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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