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도 여대생도 귀를 쫑긋 한국인과 가까워졌어요”

  • 입력 2006년 3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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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갈월동 갈월종합사회복지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8군 군무원인 돈 로하우저 씨. 신원건 기자
서울 용산구 갈월동 갈월종합사회복지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8군 군무원인 돈 로하우저 씨. 신원건 기자
“여러분, 따라해 보세요. 주소를 뜻하는 ‘어드레스(address)’의 악센트는 첫 음절이에요.”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갈월종합사회복지관 교육실. 파란 눈의 50대 아저씨가 수강생 사이를 걸어 다니며 일일이 영어 발음을 교정해 주고 있었다. 40대 주부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움직여 소리내며 강사의 입 모양을 따라했다.

50대 아저씨는 주한 미8군 군무원으로 근무하는 돈 로하우저(52) 씨. 그는 지난해 2월부터 한국인 부인인 함애경(46·미8군 군무원) 씨와 함께 매주 토요일 주민들을 상대로 무료 영어교실을 열고 있다.

로하우저 씨 부부는 미8군 군인과 군무원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체 ‘에이리어 투 액티비티(Area 2 Activity)’의 리더다. 에이리어 투 액티비티는 2001년부터 갈월종합사회복지관에서 주민들을 위한 영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보육원 양로원 방문뿐만 아니라 혼혈인 지원단체인 펄벅재단 후원 활동도 하고 있다.

이날은 2006년 영어교실의 개강 첫날. 23세 여대생부터 71세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수강생 30명이 자리를 꽉 메웠다.

갈월복지관의 김옥녀(35·여) 복지사는 “미군 강좌의 인기가 높아져 입소문을 타고 경기 안산시에서 수업을 들으러 오는 사람도 있다”며 “초급반은 25명, 중급반은 20명의 대기자가 빈자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로하우저 씨 부부의 수업 목표는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 주는 것. 초급반이지만 수업시간 내내 한국말을 절대로 하지 않도록 지도한다.

경기 부천시에 살고 있는 김모(47) 씨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직접 가르쳐 주고 싶어서 이곳을 다니고 있다”며 “학원에서 공부할 때보다 외국인에게서 살아 있는 영어를 배울 수 있어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초급반은 매주 로하우저 씨 부부가 담당하며 중급반은 미군 4명이 돌아가면서 수업을 진행한다.

이날 중급반에서 수업을 가르친 키스 반스(20·미8군 정보부대 소속) 씨는 “우리 반에는 70대 노인이 4명이나 있는데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가 참 인상 깊었다”며 “배우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으려는 노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로하우저 씨는 “우려했던 반미감정은커녕 주민들이 친절하게 대해 줘 항상 감사하다”며 “작은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한국인들에게서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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